계획하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명동에서 집까지 걸었다. 처음엔 한남동을 지나와야 하는 버스가 우회한다고 하여 종로까지 걸어가 버스를 탈 계획이었다. 걷다 보니 부모님이 상비약처럼 드시는 우황청심원이 다 떨어진 게 떠올라 보령약국에가기로 했다. 부모님이 보령약국은 다른 약국보다 저렴하다고 자주 애용하신다. 그 말을 하도 듣고 자라 나도 가끔 필요한 것들을 그곳에 가 산다. 모기 퇴치용 홈매트도 그곳에서 산다. 홈매트는 확실히 다른 곳보다 싸고 약 효과가 좋다.
보령약국엔 구매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약국에는 십여 명의 약사가 카운터에 나란히 있다. 그 앞쪽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 서있다.약사마다 줄의 길이가 다르다. 가만히 살펴보니 메인 출입구에 몰려 서 있는 것 같아 비교적 줄이 적은 곳에 섰다. 이 약국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가 단순히 값이 싸기 때문인지 궁금했다.
이른 오후의 쨍한 하늘과 늦은 오후의 흐린 하늘(12:35, 13:00, 16:13)
약국에서 나와 마을버스를 타려고 했다. 마을버스를 타려면 길을 건너야 했다. 횡단보도를 찾아 걸으며 그냥 집까지 걸어갈까 길을 건너 마을버스를 타고 갈까 계속 고민했다. 그렇게 걷다가 집까지 쭈욱 걷기로 했다. 먼저 길 건너는 일이 귀찮았다. 둘째, 25분쯤 걸으면 되는 거리였다. 셋째, 만보를 채우고 싶었다.
빈곤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하늘(16:18, 16:22, 16:25)
물거품 소리가 들린다(16:27, 16:34, 16:35)
부모님 저녁을 차려 드리려면 좀 더 서둘러 가야 했지만 그렇게 늦은 시간이 아니었기에 엄마께 가는 중이라고 전화를 드렸다.
오랜만에 많이 걸었다. 운동한 기분이다. 많이 걸었기에 하늘을 많이 봤다. 같아 보이지만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 사진을 많이 찍을 수 있어 좋았다. 게다가 만보를 넘게 걸어 각종 앱에서 수금하기 좋았다. 덤으로 받은 것이 많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