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홀 Nov 07. 2015

아들의 마음

부모님, 남동생과 조부모님 성묘를 다녀왔다.

아버지의 오랜 숙제였던 묘비와 제단을 만들고 처음 가는 성묘.

아버지의  홀가분해하시는 모습을 보며 나도 한번 쯤은 같이 가봐야지 했다.


선산에 도착해보니 조부모님 묘로 가는 길은 잡초로 무성해져 잠시 입구를 찾지 못했다. 부모님이 낫을 들고 잡초와 죽은 나뭇가지들을 치며 올라가자 남동생이 낫을 들고 같이 거든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걷다 걸어 될 만한 길이 나오자 성큼 앞서 걸으며 묘 앞에 다 달아 그만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지만 아버지는 묵묵부답.


추석 때 오지 못해 잡초가 무성해진 것만 같아 죄송스러운 마음이 드신 아버지는 구석구석, 내가 보기엔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곳까지 낫으로 꼼꼼히 정리를 하신다.


그런 아버지를 보며 "아들의 마음이구나" 싶었다.

부모님에게로 가는 길에 장애물이 없기를, 두 분의 묘 사이에 시야를 가리는 방해물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아버지 다섯 살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아버지에게 없고, 할머니와 친척들로부터 들은 얘기가 전부인 아버지가 알고 있는 할아버지의 인생.    

할아버지 돌아가시고 친척집을 전전하며 가난으로 고생만 한 할머니에 대한 아픈 기억.  


아버지는 두 분이 운명을 달리 한 나이보다  더 오래 살고 계시고, 아무 기억도 없는 당신 아버지로 인해 집안 선산에 묻힐 수 있는 자격이 있어 걱정 없다고 하시는 아버지.  


돌아오는 길에 너희들도 자식이 있어야 한다고 뜬금없이 말씀하셨는데, 집에 돌아와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도,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기리는 아버지처럼, 너희가 잊히지 않게 기억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하신 것 같아 마음이 먹먹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86-7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