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양팔을 다치신 지 6주 차다. 어제 병원에 갈 때 오른팔은 깁스를 풀 줄 알았는데 아직 골절선이 보인다고 명절 지나고 풀자고 한다. 엄마 기분에 오른팔은 거의 다 나은 것 같다고 하시며 화장실에 혼자 가시고, 양치하시고 어느 날은 설거지까지 하셨다. 퇴근 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릇을 상상하고 갔는데 싱크대가 말끔했다. 엄마가 천천히 설거지를 하셨다는데 결국 내가 다시 해야 했지만, 엄마는 깁스한 팔이 아프지 않다고 풀어도 될 것 같다고 좋아하셨다. 엄마가 아프지 않다고 하셔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이제 웬만한 일상 동작을 혼자 하실 수 있게 되는구나 싶어서 기대가 컸다. 하지만 의사는 좀 더 깁스를 해야 한다며 손을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손을 움직이는 일이 팔꿈치에 영향을 주므로 가만히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팔이 가벼워진 상태를 상상했고 주말에 둘이 목욕탕에 갈 계획을 했었다. 엄마는 아주 심란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다. 오는 길에 2주만 더 참자고 애써 위로했다. 깁스를 풀어도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 기간을 감안하면 일상동작을 예전처럼 하려면 시간이 더 걸릴터였다. 양치도 설거지도 아무것도 하지 마시라고 했다.
내가 출근하는 날은 아빠가 엄마를 돌보신다. 처음 며칠은 여동생이 왔으나 일을 다시 시작해 바쁘게 되었다. 할 수 없이 아빠 몫이 되었다. 아빠는 "평생 처음 엄마한테 음식을 먹여줬다"하시며 신기한 일을 하신 것처럼 말씀하셨다. 엄마가 아프자 두 분이 잘 싸우지 않으신다. 어느 날은 응가 뒤처리를 해줬다고 하셨다. 또 어느 날은 누워있는 엄마를 일으키려는데 힘에 부쳐 못했다고 하셨다. 오히려 엉덩방아를 찧어 아프다고 하셨다. "네 엄마는 왜 그렇게 살이 찐 거냐?"라고 하시며 엄마가 뚱뚱해서 들지 못했다고 하셨다. 엄마는 아빠 다리가 아파서 힘을 주지 못했다고 하셨다. 나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어디 골절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고 말씀드렸다. 엉덩이에 타박상은 없는지 보자고 말씀드렸는데 파스 붙여서 괜찮다고 하셨다. 파스를 혼자 어떻게 붙였는지, 제대로 붙였는지 보자고 했더니 항문 바로 옆인데 어떻게 보여주냐고 한사코 안 봐도 된다고 하셨다. "그럼, 엄마한테 보여주세요" 했더니 두 분만 방에 들어가신다. 그 모습을 보며 금실 좋은 부부를 보는 것 같아 괜히 흐뭇했다.
다음날 아빠는 체중계를 갖고 나오시더니 엄마에게 몸무게를 재보자고 하셨다. 80kg는 나가는 것 같다고 하시며. 엄마는 그렇게 많이 나가지 않는다고 볼멘소리를 하시며 체중계에 올라가셨다. 65kg였다. 아빠는 "그런데 왜 내가 못 들었지?"라며 의아해하셨다. 엄마는 "당신도 늙었으니까 그렇지"라고 하시며 허탈하게 웃으셨다. 아빠도 늙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으신 듯 헛웃음을 지으셨다. "마음은 청춘이라 내가 늙은 줄 몰라"하셨다. 쌀 한 가마니를 번쩍 들던 젊은 시절처럼 걷기, 일어나기, 달리기, 무거운 것 들기가 모두 마음대로 될 것 같지만 실은 그런 동작들이 버거워진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두 분 모두 의기소침한 표정을 지으셨다.
어제 TV에 법륜스님이 나왔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모든 것은 변하고 그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늙어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변화인데 사람은 그걸 거스르려고 하니 걱정한다는 말씀이었다.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덜 늙어 보일 것인가 등등. 나이 들면 늙고 병드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는 말에 수긍이 가면서도 그 변화를 가능하면 늦추고 내게는 닥치지 않을 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을 버리기 어렵다. 볼로장생을 꿈꾼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불가능한 것을 희망하고 있었구나 싶기도 하다.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아기가 되어 딸의 돌봄을 받으니 다시 태어나라는 하늘의 뜻인 것 같다고 하신다. 그간 나이 든 줄 모르고 여기저기 가고 싶은 곳 마음껏 다녔는데 죽는다는 걸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되셨단다. 정신없이 살지 말고 차분하게 정리하면서 자신의 몸을 돌보며 살아야겠다고 하신다. 부모님은 엄마가 다치신 걸 계기로 서로의 존재가 어떤 의미인지 느끼신 것 같다. 밉네 곱네 해도 부부로 산 세월이 반백 년이 넘었고 서로가 서로를 돌볼 상대라는 걸 실감하신 것 같다.
엄마가 다치신 일은 불행이었지만 더 크게 다치시지 않아 다행이고, 덕분에 서로의 소중함을 더 느끼는 계기가 되었고 늙고 병들고 돌보는 일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되었다. 돌봄의 세계라는 신세계를 접하며 매일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