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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필귀정

2025. 1. 17

by 지홀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지각을 한 해가 2023년이다. 회사생활이 대개 스트레스의 연속이지만, 그 해는 그중 가장 힘든 한 해였다. 자연스럽게 회사 가기 싫었고 늘 아슬아슬하게 출근했다. 심지어 유연근무제도를 활용해 9시 30분 출근으로 옮겼지만 마찬가지였다. 거의 매일 택시 타고 출근하며 9시 29분, 30분에 도착했다. 버스, 지하철이면 교통비가 한 달에 6-7만 원이면 되는데 15만 원, 어떤 때는 20만 원이 될 때도 있었다. 돈은 돈대로 들고 마음은 해이해져 지각을 밥 먹듯이 했다. 결국 연말에 근태불량으로 감사관 면담을 했다. 주의를 받았다. 징계는 아니었지만 벌을 받고 나니 정신이 들었다. 때로 채찍질이 마음을 새롭게 먹는 계기가 된다는 걸 새삼 느꼈다.


자기 자신은 안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나의 행동과 동기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잘못된 행동에 자기 합리화로 타당한 설명을 붙여도 내심 나는 안다. 그게 변명과 핑계라는 것을. 다만 타인 앞에서 내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고, 타인이 모르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신이 한 행동이 잘못된 것이 아님을 피력하려고 노력한다. 나보다 다른 사람의 죄가 더 크다고 말하고,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줄 몰랐다고 말하고, 내가 한 건 정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죄를 물은 사람이 사실과 다르게 잘못 알고 있다고 반격한다. 그런 주장과 공방이 오가는 사이 죄의 본질은 사라지고 물타기 되어 희석된다. 그렇게 죄가 죄로 인정되지 않고 벌을 받지 않고 지나가면, 무엇이 잘못인지 알고 있던 "나" 자신조차 자기 합리화로 아주 떳떳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죄로 인식되지 않는다.


잘못했을 때는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아야 한다. 아주 하찮은 것일지라도. 잘못한 일에 대한 대가를 치르고 나면 마음이 편해지고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양심에 걸릴 일을 하고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으면 그렇게 해도 되는 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잘못된 일을 또 저지르고 비슷한 다른 종류의 잘못으로 확대시켜 차곡차곡 잘못들을 쌓는다. 마치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듯. 남에게 권하기도 한다. 그래도 된다고. 아무 문제 생기지 않는다고. 그 말에 동화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다. 동화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면 그 조직, 사회는 썩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깨진 유리창 이론처럼.


그러나, 결국 올바르지 않은 일은 철퇴를 맞게 되어있다. 비록 시간을 돌고 돌아 썩은 물이 악취를 풍기고 주변을 오염시키고 많은 사람이 그 악취에 괴롭고 힘들었더라도 나중에는 맑은 물이 조금씩 흘러 구정물을 정화시킨다. 결국 모든 일은 반드시 바른길로 갈 것이므로. 그러니 "나"만이라도 동화되지 않으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내 잘못의 대가를 깨끗하게 치르는 용기를 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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