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4
은행마다 점점 지점을 없애고 있다. 사람들이 잘 가지 않기 때문이다. 동네에 그것도 아주 가까운 곳에 우리, 신한, 국민, 하나은행, 새마을금고, 농협이 있다. 그간 아주 편하게 은행을 이용했는데 어느 날 국민은행이 이전했다. 걸어서 갈 만한 곳이긴 했지만 도보 5분 거리에 있던 은행이 도보 15분~20분 거리로 옮기고 나니 잘 가지 않게 된다. 물론 인터넷뱅킹을 하므로 은행에 직접 갈 일이 많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 갈 일이 있다. 부모님은 국민은행이 멀어지자 입출금이 편리한 다른 은행으로 옮기셨다. 부모님 세대는 아직 통장이 꼭 있어야 믿으시고 직접 가서 은행일을 보시기 때문에 거리가 멀면 아무래도 불편하다.
점심시간에 엄마를 모시고 치과에 들렀다가 은행일을 봤다. 동네에 있는 우리은행 입구에 대문짝만 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신권 소진" 그제야 다음 주가 설날이란 걸 깨달았다. 세뱃돈을 빳빳한 새 돈으로 준비하던 때가 있었는데, 부모님도 나도 이제 새 돈에 의미를 두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현금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되면서인 것 같다. 현금이 생기면 바로 통장에 넣고 카드를 갖고 다닌다. 휴대폰에 입력한 카드로 결제하기에 실물 카드가 필요 없지만, 간혹 인터넷 연결이 매끄럽지 않거나 매장에서 모바일 결제가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실물 카드를 갖고 다닌다. 현금을 갖고 다닐 때는 헌 돈보다 새 돈을 쓰는 느낌이 좋아서 선호했던 것 같다.
현금, 카드 없이 휴대폰 하나만 있으면 되니 가방이 필요 없어졌다. 더구나 겨울에는 주머니에 휴대폰 하나만 넣고 다닐 수 있어 아주 편리하다. 회사에서 직원들을 봐도 가방 없이 다니는 직원들이 꽤 많다. 남자들은 워낙 주머니를 잘 활용했지만 여자들은 가방에 넣을 것들이 꽤 많다. 화장품 파우치, 지갑이 필수였는데 언제부터인가 빈손으로 출퇴근하는 직원들이 늘었다. 나도 따라 해봤다. 도시락 싸지 않는 어느 날 휴대폰 하나 달랑 들고 출근했다. 가방 없이 출근하는 길이 무척 어색했지만 아주 편했다. 동네 마실 나가듯 출근하는 마음마저 가벼웠다. 짐 없이 두 손을 자유롭게 하는 일이 이렇게 편리하다니. 백팩을 멜 때도 두 손이 자유로웠지만, 어깨에 짐을 멘 채 빈손인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 후 종종 휴대폰만 들고 출근한다.
스티브잡스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나타난 스마트폰의 거듭되는 발전으로 시계, 달력, 카메라, 필기구, 실물 카드, 가방 등을 필요 없게 만들었다. 그럴수록 아날로그 감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 물건을(대표적으로 카메라, 필기구) 애용하는 마니아층이 되지만, 나처럼 그냥 간편한 걸 원하는 사람은 없어도 별로 아쉽지 않은 물건이 되었다. (앗! 다이어리는 아직 계속 쓴다. 휴대폰 노트 기능을 써도 일기는 다이어리에 쓴다.) 예전에 많은 사람이 쓰던 물건인데 잘 쓰지 않는 것들이 많다. 쌀을 씻던 쌀 조리개(쌀에 돌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으므로 거를 필요가 없어졌다.), 걸레(빨아 쓰지 않고 일회용 물티슈와 물걸레 청소기가 대체), 손수건(일회용 티슈가 대체) 같은 실생활에 쓰던 물건들. 그러고 보면, 어쩌면, 미래에는 실물카드를 보며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라고 하는 세대가 나타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