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25
외국여행을 패키지로 가면 대개 그 도시의 유명한 성당이 투어 일정에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호주 시드니의 세인트 메리 성당, 캐나다 몬트리올 성요셉 성당, 미국 뉴욕 성패트릭 성당 등.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건축물 자체가 볼만하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다. 우리나라에는 명동 성당이 있다. 오롯이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 명동성당을 산책했다. 마침 그곳에서 결혼식이 열리고 있었다. 하객들이 북적대는 가운데 외국인 관광객들이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었다. 명동에 가면 다양한 국가에서 온 관광객들을 보게 되는데 그중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관광객이 무척 많다. 나도 관광객처럼 성당과 하늘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 성당 뒤편 마당에는 벤치에 삼삼오오 앉아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고 성모 마리아 동상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도 있었다.
낮 기온이 10도에 육박하는 봄날 같은 날이었다. 미세먼지는 물론이고 초미세먼지 없는 아주 맑은 날이었다. 패딩이 덥게 느껴졌다. 패딩 지퍼를 내리고 따뜻한 햇빛을 느꼈다. 하지만 그늘이 드리운 곳에 들어서자마자 찬 기운이 바로 몰려왔다. 건물을 사이에 두고 그늘이 진 곳과 햇빛이 비추는 곳의 온도 차이가 극명했다. 하늘도 그랬다. 찬란한 햇빛으로 눈이 부실 지경의 하늘인가 하면 명동성당 건너편 빌딩 숲의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인지, 밀려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우리나라의 혼란한 상황이 연상된다. 극단으로 치닫는 분열된 모습이 점점 심해질 것인지 가라앉을 것인지 알 수 없다. 먹구름이 몰려오는지 밀려나는 것인지 알 수 없듯이. 다만, 구름이 밀려나는 중이라면 맑은 하늘이 점점 더 넓어질 텐데 하는 작은 희망을 부질없이 가졌다.
하차해야 할 정류장 세 정거장 전에 내렸다. 걷고 싶었다. 이렇게 봄날 같은 날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었다. 마로니에 공원에 젊은 친구들이 버스킹을 하고 있다. 음악에 집중하는 사람, 벤치에 누워있는 사람, 데이트하는 연인들, 유튜브 방송을 찍는지 휴대폰을 연신 보며 말을 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의 사람들이 따뜻한 날씨를 즐기는 듯 보였다. 어느 가수의 팬클럽 사람이 느닷없이 다가와 무슨 서명을 해달라고 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또래 사람으로 보이는 팬이었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요즘엔 "나이"에 따라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을 것을 구분하는 일이 많이 없어졌다. 특히 취미생활 영역에선 나이가 큰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의 연령층이 넓어지고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서로 연대의식을 갖는다. 세대 간 소통이 안 되는 시대에 취미는 좋은 소통 방법인 것 같다.
천천히 길을 걷다가 집 근처 스타벅스에서 클레어키건의 "푸른 들판에 서다" 소설책을 읽었다. 얇은 책이어서 완독 하는 게 목표였는데 단편 하나 밖에 읽지 못했다. 그래도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좋았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음에 마음이 차분해졌다. 매일 해야 하는 일로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하루는 머릿속을 정리할 시간이 없어 마음이 붕 뜬 것처럼 안정적이지 않다. 일을 매듭짓지 않고 계속 질질 끄는 기분이다. 나는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란 걸 다시 느끼며 부모님 저녁 식사를 차려드리기 위해 서둘러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