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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당

2025. 2. 12

by 지홀

올해부터 임금피크제가 시작되어 정원 외 인력으로 분류되었다. 직급별 정원에서 빠졌기에 내 자리로 승진할 수 있는 인원이 늘었다. 후배에게 길을 터 준거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급여가 삭감되고 일하는 시간이 줄었기에, 중간 퇴직금 정산을 받았다. 퇴직금 산정방식이 복잡해 잘 모르겠지만 일 평균임금을 알게 되었다. 월급으로 받았기에 일급, 시급으로 계산해 본 적 없는데 시급으로 나눠보니 보잘것없다. 다만, 그 시급을 하루 8시간, 한 달 꾸준히 일한 거로 계산하기에 나쁘지 않을 뿐이었다. 양으로 승부한 결과다.


인생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일 하느라 보냈고 그 대가로 경제적 자립을 이뤘다. 많은 시간, 노력을 들여 얻은 결과다. 하루 14시간 이상 일한 나날이 부지기수, 주말과 밤낮을 가리지 않은 날이 수없이 많다. 요즘 말로 "갈아 넣으며" 일했다. 그래도 힘든 가운데 재미있고 즐겁고 성취감, 보람 있는 일들이 있어 그렇게 "갈아 넣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며 일하고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에 비하면 감사한 일이지만, 양 보다 질로 승부를 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문득 궁금해졌다. 시간당 수 십만 원, 수백만 원을 벌어들인 사람들은 하루 8시간, 한 달 내내 회사 일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일 것 같다. 물론 꾸준하게 일했을 것이다. 꾸준함이 없다면 시간당 백만 원을 받는다 한들 그 횟수가 적다면 경제적 자립을 하기 어려울 테니. 그러나 시급을 수백만 원 받는 사람에게 일감이 없을 리 없다. 그의 가치는 이미 여러 가지로 검증되어 시급이 그렇게 책정되었을 것이므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기 일로 부가가치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질로 승부를 보는 사람들인 것 같다. 양으로 승부한 나 같은 사람은 결과물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결과물이 있어도 그 자체로 그친다. 그런데 질로 승부하는 사람은 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결과물을 근사하게 만들어낸다. 거기에 결과물 하나에만 그치지 않고 그 결과물에 의해 2차, 3차 다른 결과물로 확장된다. 대체로 창작물이 그렇다.


지금껏 양으로 승부했으니 질로도 한번 승부해 볼까! 승부는 돈이 아니라 결과물을 확실히 만들어내고, 그 결과물이 다른 모양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려면 퇴직 후에도 시간과 노력을 또, 더 들여야 한다. 그래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이 될 테니. "흠... 그러면 질이 아니라 양으로 밀어붙이는 셈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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