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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 단원

2025. 2. 15

by 지홀

취미로 연극 극단에서 활동한 지 벌써 9년 차다. 9년 차라고 하니 뭔가 전문가적 냄새를 풍기지만 실상은 아마추어다. 아마추어 중에서도 아주 상 아마추어다. 연극 관람할 때, 여전히 극 내용에 몰입해 내가 감동했는가 여부가 중요하다. 분석하며 관람하지 못한다. 그저 평소 연극, 뮤지컬 관람을 즐겼고 어느 날 아주 치기어린 마음으로 시작했다. 지금은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 헤매던 수준에서 조금 벗어나는 중이랄까.


연극의 묘미는 매회 다르다는 점이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한번 찍으면 수백 번, 수만 번을 돌려봐도 똑같은 장면을 보지만 연극은 다르다. 같은 작품, 같은 배우지만 매회 다른 결과물이 나온다. 무대에서 느껴지는 관객의 반응에 따라서도 달라지고 배우들의 합, 조명과 음향의 합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그래서 같은 공연을 보고도 언제 봤느냐에 따라 관객의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물론 일정 수준의 결과물을 담보해야 하므로 연습량은 상당하다. 우리 극단만 해도 정기공연인 경우는 3개월에서 5개월가량 연습한다. 연습량과 공연의 결과물은 거의 비례하며 연습할수록, 공연할수록 작품과 인물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프로 배우의 공연도 첫회와 마지막 회의 느낌이 다르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고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이 매번 뻘쭘하고 어색하지만, 극 중 인물이 되어 연습한 대로 무대에서 펼치는 일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나도 모르던 나를 만나는 일이고, 새로운 인물을 만나면서 나도 성장한다. 책으로, 문자로 되어 있던 극 내용을 살아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얘기로 탈바꿈하는 과정은 때로 지루하고 힘들지만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인물로 탄생시켰을 때의 희열이 크다. 배우뿐만 아니라 조명오퍼, 현장 진행, 홍보물 제작, 연출 등을 하며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을 통해 성취감을 느끼는 동시에 공동 작업을 배웠다.


올해는 단원이 된 지 오래된 탓에 운영진으로 활동한다. 위와 아래의 중간쯤에 낀 기수로서 소통 역할을 요청받아 고심 끝에 하기로 했다. 극단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기에 무보수로 일하는 운영진이 늘 고생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하고 싶은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그 어려움을 헤아려본 적 없다. 막상 운영진으로 활동해 보니 극단에서 오래 활동한 사람은 의무적으로 한번 해봐야 하는 일 같다. 아마추어 극단이라도 단원이 있고 연습실이 있고 회비를 걷으므로 운영진이 있어야 한다. 크게는 1년에 다섯 번 있는 공연기획부터 연습실에 망가진 부분을 고치고 소품을 관리하는 등 소소한 일까지 손길이 필요하다.


오늘 2025년 신입단원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입단할 때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이후로 처음이다. 운영진이기에 참석했는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흥미로웠다. 스무 명이 참가했는데 다들 말솜씨가 좋았고 임기응변이 강했다. 각자 안에 끼를 숨기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연령대도 10대부터 50대까지 다양했다. 이들의 열정이 전해져 내게도 의욕이 생겼다. 극단에서 해보지 않았던 일을 해보고 싶어졌다. 기획, 조연출, 음향오퍼, 희곡 쓰기 등 아직 도전해보지 못한 분야를 차근차근 도전해 봐야겠다.


겨울이 이제 갔으면 좋겠다(12:02, 12:03,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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