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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피크

2025. 2. 25

by 지홀

아침에 눈이 일찍 떠졌다. 아침마다 일어나기 힘들었는데, 아무래도 어제 인사발령의 여파인 듯하다. 눈을 뜨자마자 부당한 처사라고 할지 말지 갈팡질팡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어젯밤 마인드컨트롤을 한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출근하자마자 임금피크제 운영기준을 봤다. 그 운영기준에 있는 대로 현 부서에서 일하고 싶다는 희망 직무 신청서를 연초에 냈는데, 이제 와서 빠지라고 하는 일이 정당한 것인지 들여다봤다. 임금피크제 기준에는 "해당직원이 신청한 것을 반영할 수 있다"로 되어있다. 반영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그러나 팀장이 대표에게 내 의사를 전달했고 컨펌받은 일이다. 둘째는 감사관의 직원을 발령 내려면 해당부서장과 의논하게 되어있다. 팀장은 내가 업무에서 빠진다는 얘기를 들은 적 없다.


표면적으로 퇴직준비를 하라는 배려다.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 교육 듣고 자신의 시간을 가지라는 거다. 얼마나 좋은가. 월급 받으며 회사일은 안 해도 된다 하니. 완전 꿀이다. 이렇게 좋은 회사가 어디 있는가.


그런데 불쾌한 이유는 무엇인가? 쫓겨나는 것 같아서다. 작년에 팀장 보직을 내려놓을 때는 마음이 홀가분했다. 내려가는 사람이니 후배에게 자리 내주고 나도 책임감을 내려놓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업무에서 아주 배제되는 일은 좀 심적 타격이 있다. 임금피크제 1년 차로서 아직 현업에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큰데, 필요 없는 잉여인력이 되는 것 같아서다. 후배들에게 쓸모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게 싫어서다. 직장 생활하며 나름 가진 자부심은 내 이름을 걸고 책임감 있게 일했다는 거다. 업무 성과를 내며 회사 발전에 기여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고 밀쳐내는 것 같아서 아주 마음이 불편하다. 거기에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시간 외 근무수당을 받을 수 없다. 적잖은 금액이다. 퇴직할 때까지 바짝 노후자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정리되지 않은 마음상태로 출근했다. 남은 며칠동안 하던 일을 빨리 마무리하고 결재를 득해야 한다. 내 몫의 일은 깔끔하게 처리하고 가자는 주의여서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을 남기는 건 내가 견딜 수 없다. 그런데 이런 마음가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만 내려놓으란다.


퇴직의 수순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될 일인데 내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눈부신 아침 태양과 파란하늘, 격정적인 구름(08:38, 08:54, 12:47)
점심먹고 본 하늘, 구름이 반가웠다. 해 지는 하늘색이 예쁘다.(12:49, 12:50,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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