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28
"럭셔리가 어떤 뜻이라고 생각하세요?"
"명품, 고급스러움" 그런 거 아닐까요?"
"네에~ 다들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런데 명품과 럭셔리는 다르거든요. 제가 생각한 럭셔리는 경험이에요. 우리가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장소에 가고 같은 음악을 들어도 저마다 느끼는 것들이 다르잖아요. 누군가에는 대수롭지 않은 장소가 누군가에게는 좋은 추억의 장소인 것처럼요. 저는 그런 럭셔리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 여기라고 생각했어요"
회사 건물에 입주한 지역홍보 사무실 분들과 다 같이 점심 회식을 했다. 지역을 마케팅하는 우리 업의 특성상 그 지역을 잘 알고 있는 건 믈론이고 셀링포인트가 될만한 것을 몇 가지 머릿속에 정리하고 다니는 건 기본이다. 한 지역의 마케팅 서울사무소를 담당하는 팀장이 럭셔리란 단어에 들어있는 철학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그 모습을 보며 '이 분은 정말 이 일을 사랑하시는구나. 이 지역을 애정하시는구나'라고 느꼈다.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며 '럭셔리'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았다. 호화로움, 사치, 사치품이란 뜻과 함께 '드문 호사'란 뜻이 있다. 자주 누릴 수 없는 기쁨, 혜택이란 설명이 붙어있다. 이 분이 설명한 말에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자주 누릴 수 없는 기쁨은 물질적인 것으로만 해결되는 건 아니다. 그런 기쁨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기대하지 않은 순간에 느끼게 된다.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자신의 일에 철학과 애정을 담아 차근차근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몇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슬로건 하나에 의미를 담기 위해 팀원들과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설명하는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던 때. 정의를 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팀원의 마인드를 하나로 묶을 수 있었고 서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사업방향을 정하기 쉬웠다. 모든 팀원이 슬로건의 정의를 이해하고 있었기에 그에 맞춰 사업 내용을 만들고 마케팅, 홍보 방향을 정했다. 따로 사업별 가이드라인을 줄 필요 없었다. PR 담당자와 보도 자료를 검토할 때 슬로건의 철학을 전달할 수 있는 단어를 신중하게 고르고 그에 맞는 콘텐츠를 정했다. 콘텐츠는 사업 내용이었다. 연간 추진 일정이 있었으므로 그에 맞게 보도자료 꼭지를 뽑아내는 일은 쉬웠다. 코로나 시기여서 업계가 모두 힘들었고 손을 놓는 곳이 많았던 탓에 우리가 해외 배포하는 보도 자료는 거의 모든 업계 신문과 잡지에 실렸다. 그 시기 인터뷰도 많았는데, 그때 나도 이 분처럼 막힘없이 술술 설명할 수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어떤 정책마다 왜 이론가들이 필요한지 이해했다. 이론적 근거(철학)는 사람을 설득하기 쉽기 때문이다. 회사의 비전과 미션, 핵심 가치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다. 그냥 보여주기 식으로 글자로만 존재한다면 아무 의미 없지만, 의미를 담아 모든 사업의 방향성을 맞춘다면 굉장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팀 단위 업무에도 회사의 비전에 맞추어 타이틀, 슬로건을 만들고 그 단어가 어떤 의미인지 정의하면 일하기 편하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을 오랜만에 봤다. 예전 내 모습을 반추하다 저 열정이 이젠 남아 있지 않음에 씁쓸함을 느꼈다. 아마도 이 회사에서는 다시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돌이켜 보니 그 시절이 내게는 드문 호사를 누리던 시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