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
우리나라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회사에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20년~30년 전에 비하면 많이 바뀌었다. 일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대학보다 실전경험을 더 빨리 쌓을 수 있는 길을 택하도록 격려하는 마음이 확산되는 듯하다. 무얼 하든 일단 대학을 나와야 한다는 맹목적 믿음이 옅어졌다. 주변을 봐도 소위 SKY대학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친구가 있는 반면, 헤어숍에 취직해서 관련 자격증을 따기 위해 노력하는 아들을 대견해하는 친구가 있다.
대학에서 이론을 배우는 것보다 현장 경험이 더 중요한 분야는 그 길로 가도 된다. 전문 기술은 회사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 일을 필요로 하는 모든 곳에 취직할 수 있고 자영업도 가능하다. 퇴직시기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하고 싶을 때까지 할 수 있다.
나도 나이 들면서 전문기술을 가진 사람은 우리 삶의 기본, 내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므로 함부로 볼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과학기술, 의료기술 같은 거창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네일, 헤어, 전기, 가전 수리, 방수, 누전, 누수 등등 실생활과 밀접한 전문분야가 많고 그 분야 전문가들이 없다면 당장 일상이 괴롭다.
일례로 전기 차단기가 내려가면 동네 전파사에 연락한다. 한국전기공사협회, 한국전기안전 공사 같은 곳이 있지만 문의, 신청, 접수가 쉽지 않다. 동네 오래 사신 전파사 사장님에게는 긴급 출장을 요청할 수 있어 편리하다. 풍부한 현장경험으로 척이면 척이다. 사장님 연세가 많아 더 이상 일을 못하실까 봐 걱정이다. 마음에 드는 스타일을 해주는 헤어 디자이너가 미용실을 옮긴다고 하면 길 잃은 양이 된 기분이다. 내 마음에 맞는 디자이너를 찾아 헤매야 하기 때문이다. 살로 파고드는 손톱, 발톱을 잘 관리해 주는 네일숍 사장님이 문을 닫는다고 하면 곤란하다. 추운 겨울날 보일러가 작동하지 않을 때 수리기사가 없다면 아주 난감하다. 갑작스레 인덕션이 고장 나면 밥 해 먹기 어렵다. 각종 가전제품 수리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편리하다. 하다못해 자주 가는 가정의원, 안과, 이비인후과 등의 의사가 이직하면 그 병원을 가야 하나 고민까지 하게 된다. 친절하면서도 진단과 처방을 잘 내리는 의사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 머리 염색하러 미용실에 다녀왔다. 동네 헤어숍에서 일하던 직원이 옮긴 곳으로 갔다. 지하철 타고 20분 가야 하는 곳이다. 굳이 차비와 시간을 들이면서 간 이유는 머리 색상, 커트를 내게 어울리는 것으로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새로 찾아보기 귀찮기 때문이다. 결과물은, 당연히 마음에 든다. 그런데 동네보다 비용이 조금 비싸다. 다음에 또 갈지 망설이게 되었다. 헤어디자이너 입장에서도 3개월에 한 번 정도로 커트와 염색만 하는 데다 파마를 하지 않는 고객이 우수 고객일지 궁금했다. 그 헤어디자이너는 내가 단골로 가지 않아도 실력이 출중하여 승승장구할 것이다.
불편하고 귀찮지만, 당분간 미용실 유목민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