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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마음

2025. 3. 3

by 지홀

"도시락 싸갖고 다니지 마. 사람들하고 밥 먹어. 나는 맨날 회사, 집만 왔다 갔다 해서 친구가 없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은 날이다. 오전 11시에 일어나 세수도 안 하고 찌개를 끓였다. 점심을 같이 드시던 아빠가 느닷없이 말씀하셨다. 친구가 하나도 없다고. 연세가 있으시니 이제 만날 친구가 없다는 의미로 들었는데 돈 버느라 바쁘게 살다 보니 친구가 없다는 말씀이셨다.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아빠의 인생을 잠깐 반추해 보았다.


다섯 살 때 해방되었고 열 살 때 전쟁을 겪으셨다. 무거운 이불을 메고 피난길에 나섰던 얘기를 여러 번 하셨는데 왜 그 무거운 이불을 들고 갔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빠 키가 작은 건 아마 그런 연유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들은 아빠의 전쟁 경험담이었는데 문득, 그 전쟁통에 살아남은 일이 참 운 좋은 일이었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전쟁이 끝나고 겨우 학교를 다니셨지만 가난해서 학업을 길게 하실 수 없었다. 10대를 방향성 없이 정처 없이 방황하고 떠돌다 군대에 가신 것 같다. 제대 후 무작정 서울에 와 막노동을 하시다가 운 좋게 우체국에 취직하셨다. 계약직으로 입사해 성실하게 다니신 덕에 정규직이 되셨다. 어렸을 적 아빠가 이불속에 엎드려 천자문을 열심히 외우고 쓰시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책상에 앉아 뭔가 읽고 끄적이는 걸 좋아하신다. 독립했다가 부모님과 다시 합가 하면서 내가 쓰던 책상, 의자를 놓을 곳이 없이 안방에 놨다. 아빠는 그때 평생소원인 자신의 책상과 의자가 생겼다고 엄청 좋아하셨다. 우체국 공무원이 된 후 안정적인 생활을 하실 수 있었고 덕분에 우리도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찢어지게 가난하지 않았다.


이렇게 아빠의 인생을 잠깐 돌아보니 친구 사귈 기회가 많이 없었을 것 같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셔서 친목모임이 있었지만 퇴직한 후 점점 연락이 뜸해지더니 이제는 다들 연락이 끊겼다고 하셨다. 하긴 퇴직하신 지도 벌써 30년 전이다. 그때는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친구가 아빠 곁에 있었을까? 세상살이를 제일 잘 아실 것 같으면서도 하나도 모르는 말씀을 하시는 걸 보면 친구 만들기를 잘하셨을 것 같지 않다. 성격도 내성적이라 먼저 다가가지도 않으시니.


아빠는 요새 "너는 왜 그렇게 나를 똑 닮았냐?"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 얼굴을 닮았는데 나이 들수록 성격, 기질이 많이 닮았다는 걸 나도 느낀다. 하다못해 질병도 닮았다. 밤에 안 자려는 것도 그렇고 불안함이 크고 예민한 것, 탈모, 눈이 약한 것도 닮았다. 그래서 나도 친구가 없을까 봐 걱정하신 듯하다.


"나는 돈 아끼려고 사람들하고 잘 안 먹었어. 놀러도 안 가고. 그저 집하고 회사만 다녔어. 넌 도시락 싸지마. 사람들하고 먹어. 친구가 있어야 해"


아빠는 친구들과 여행 간다고 하면 집이 제일 좋은데 왜 가냐는 이율배반적인 말을 하실 거면서, 친구 없을까 봐 걱정하는 말씀을 하신다. 나이 드시면서 이래도 걱정, 저래도 걱정하는 마음이 커지시나 보다. 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한다. "아빠, 저는 친구 많~~~~ 아요. 걱. 정. 안. 해. 도. 돼. 요"

바람많이 부는 날(17:31, 17:31,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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