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6
문득 친구 생각이 났다. 동종 업계, 엄밀히 말하면 경쟁사에서 일했고 둘 다 뉴질랜드로 파견 나가 알게 된 사이다. "그런 회사에 이런 직원이 있대"라는 말을 들었지만 경쟁사라서 만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처럼 타지에서 혼자 지낸다는 동갑내기가 궁금해졌다. 지금은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먼저 그 친구 집에 찾아간 것 같다. 친구 왈 "그때 네가 빨래를 잔뜩 들고 나타났잖아"라고 말하는 걸 보면. 아마도 세탁기를 빌려 쓰자는 핑계를 대고 갔던 것 같다. 그 후 꽤 친해져서 자주 놀러 다녔고 서울로 돌아온 시기도 비슷해 계속 연락하고 지냈다. 그렇게 친구가 된 지 30년이 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친구는 결혼하고 아이 낳고 학부모가 되고 직장인의 엄마가 되었다. 우리의 만남도 그에 따라 점점 줄었지만, 언제 만나도 속내를 말할 수 있는 사이다.
갑자기 일이 없어지니 친구에게 연락할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느닷없이 연락해 점심을 같이 했다. 친구는 늘 일했기 때문에 주로 점심시간에 만났다. 신기하게도 우리 둘의 직장 소재지가 많이 겹쳤다. 지난달에 만나고 이렇게 짧은 기간 안에 또 만나는 일은 아주 보기 드문 일이다. 친구가 이유를 궁금해할 것 같아 뭐라고 말할까 궁리하다가,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다. 그냥 만나고 싶고 밥 먹고 싶으니 만나는 것뿐, 친구 사이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아니나 다를까 친구는 전혀 의아해하지 않았다.
이직하고 싶어 하는 친구 얘기를 듣다가 창업 얘기로 이어지고 서로의 가족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수다를 나누었다. 얘기 끝에 친구가 걱정이 있다며 서두를 꺼내길래 무슨 얘기인가 긴장한 얼굴로 들었다. 큰딸이 회사에서 건강검진을 했는데 갑상선암 판정을 받았다고 했다. 20대인데 암이라니. 친구는 자신이 갑상선암 수술을 받은 전력이 있어 치명적인 암이 아니란 걸 알지만, 기도 옆에 생겼고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등 걱정이라고 했다. 그 말을 덤덤하게 했다. 별 거 아니란 듯.
친구는 마음이 아주 단단하다. 시련에 무릎 꿇고 굴복하기보다 이겨내는 편이다. 사기를 당했을 때도, 남편 사업이 망했을 때도, 코로나로 가정 경제가 힘들었을 때도 울고불고하지 않았다. 그 일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는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재빨리 결정하고 망설임 없이 행동한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의연하기 쉽지 않은데, 하도 꿋꿋해서 듣는 나는 가끔 그 심각성을 깨닫지 못할 때가 있다.
인생의 무게가 있다면 남편과 자식을 업고 있는 친구의 무게가 좀 더 무거울까? 서로의 인생 무게를 비교할 수 없지만, 단순 산식으로 무게값을 정한다고 치면, 소중한 사람의 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무게가 나갈 것 같다.
말은 덤덤하게 하지만 친구의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지 이제야(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엄마의 병간호를 하고 나서야) 눈에 보인다. 흘려듣지 말고 친구 딸이 병원 간다는 날짜를 기억했다가 언제 수술하는지, 암의 위치가 수술하기 괜찮은 지를 물어봐야겠다. 어설픈 위로 보다 관심표명이 때로 더 큰 위로가 된다는 걸 이번 겨울에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관심은 따듯한 마음의 표현이고, 그 따듯한 말 한마디로 삶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