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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세포

2025. 4. 2

by 지홀

"노후 준비 많이 했어요?"


마흔 넘은 미혼 후배와 점심을 먹다가 물어봤다. 내 처지랑 비슷하다고 여기고 혼자 살 준비를 잘하고 있냐는 의미를 담은 질문을 했다. 남편, 자식 없이 우리 스스로를 돌보려면 기혼자보다 경제력이 더 있어야 한다는 뻔한 말을 했다. 후배는 훈계 같은 내 얘기를 빤히 듣다가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순간 나는 좀 당황했지만, 곧 표정을 바꾸고 "진짜~ 잘됐네. 언제 생겼어요?"라며 급히 말을 건넸다.


미혼인 후배를 거의 모태솔로인 듯 대했는데, 사실 연애사를 알 정도로 친하지 않기 때문에 모태솔로라고 단정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저 10년 넘게 한 회사에서 같이 일하며 딱히 무슨 소식을 듣지 못했기에 내 마음대로 그렇게 생각한 거다. 거기에 마흔이 넘었으므로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다고 여긴 거다. 이 얼마나 편협하고 선입견에 갇힌 것인지. 나도 그 나이에 연애와 결혼을 꿈꿨으면서 내 나이가 이렇다고 그 새 잊었다.


후배는 무려 여덟 살 연하 남자친구를 만났다. 그것도 일하면서 알게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후배의 연애사를 듣게 되었다. 듣다 보니 부러웠다. 연애와 결혼에 대해 거의 잊고 있다가 이런 얘기를 들으면 '혼자'라는 현실을 새삼 자각한다.

춥다 춥다(08:43, 09:07, 09:09)


늦은 밤, 극단의 S가 카톡으로 사진을 보내왔다. 남녀가 다정히 마주 보는 사진인데, 무슨 연극 포스터인가 했다. 그런데 사진 밑에 결혼한다는 문구가 보였다. 나는 사진을 확대해 얼굴을 다시 봤다. 극단에서 같이 활동하는 B가 보였다. 세상에, 믿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둘은 평소 그런 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둘이 결혼하는 게 실화냐며 거듭 확인한 후에야 겨우 믿을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무려 6년 가까이 연애를 했단다. 감쪽같이 비밀연애를 하다니, 그저 놀라웠다.


얼마 전 S가 축하해 줘서 고맙다며 저녁을 샀다. B와 언제부터 사귀었는지, 왜 빨리 결혼하게 됐는지 등등 연애사를 들려줬다. 마흔 초반의 S는 B보다 다섯 살 연상이다. 둘 다 연극을 좋아하므로 앞으로도 취미 때문에 다툴 일은 없어 보였다. 우리는 S에게 능력자라며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나무 사이 하늘이 어지러운 시국같다, 태양이 저렇게 굳건하게 빛나듯 우리나라의 운명도 빛나기를(09:09, 09:09, 09:10)


쉰이 넘으면서 결혼에 대한 간절함이 사라졌다. 연애도 강 건너 불구경이다. 아주 가끔, 시시콜콜한 매일의 일상을 나눌 사람이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늘 그렇지 않기 때문에 슬프지 않다. 대체로 혼자 잘 지낸다. 그러다 이렇게 사회적으로 늦었다고 인식되는 나이에 연애하는 얘기, 결혼하는 얘기를 들을 때면 좀 외롭다. 이제 내게는 그런 기회가 다 사라졌다고 믿기에 더욱 외롭다고 느낄 거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를 만나라고 하면 뒷걸음질 친다. 생판 모르던 사람과 엮이는 일, 이제 불편하다.


그렇다고 연애 세포가 다 죽은 건 아니다. 로맨스 소설, 영화, 드라마 등을 볼 때 썸 타는 설렘과 사귈 때의 즐거움, 충만감을 등장인물 감정에 바로 이입한다. 내 마음도 간질거린다. 그런 자신을 발견할 때 이십 대 같다. 비록 주름 가득하고 탄력 떨어진 얼굴이지만, 그 마음은 칠십, 팔십이 되어도 같을 것 같다. 그게 살아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4월이 맞냐(09:10, 11:48,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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