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6
방을 따뜻하게 하고 잤지만 감기 기운이 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새벽에 계속 눈이 떠졌다. 깨다 자다 반복하다 배를 타기 위해 일찍 일어났다. 오늘은 '금오도'에 가기로 했다. 친구 지인의 강력한 추천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곳이 '걷기'로 유명한 곳인 듯하다. 특히 제3코스가 절경이라고 했다. 일요일이라 금오도에 가려는 사람이 많을 수 있으므로 서둘러 갔다. 9시 20분 배를 타려고 7시 30분에 출발했다. 돌산 신기항에 도착했는데 승용차로는 우리가 첫 번째 탑승이었다. 여객선에 자동차는 물론 전세버스까지 싣는 걸 보고 놀랐다. 그 정도로 크고 튼튼한 배라니. 겉모습은 꽤 낡아 보였는데, 겉과 속이 다른 배였다. 운전자는 차를 운전해 배에 싣고 동승자들은 걸어서 배에 탑승한다. 신분증을 제시해야 표를 살 수 있고 탑승 시에도 표와 신분증을 확인했다. 금오도 여천항까지 약 25분 정도 걸리는데, 배에는 의자가 아니라 방이 있었다. 신발 벗고 방에 들어가니 온돌바닥이 뜨뜻했다. 어제부터 내내 추웠는데 따뜻한 바닥에 앉으니 몸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금오도에 도착해 제3코스 출발지점인 직포항으로 이동했다. 이 섬에서는 차가 없으면 이동할 수가 없다. 필히 렌터카를 하거나 자차를 가져가야 한다. 코스 시작점에 안내하시는 분이 지도를 가리키며 친절히 코스를 설명해 주신다. 우리가 차를 주차했기에 다시 와야 한다고 했더니 '비렁출렁다리'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알려주셨다. 바람은 찼지만 날씨가 맑았다. 걷기 좋은 날이었다. 우리는 계단을 올라 걷기 시작했다. 둘레길 정도로 생각했는데 가파른 바위 길이 몇 군데 있었고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어 잠시 머뭇거렸다. 다행히 단체 산행하는 분들이 많아 조금 기다리다 그들을 따라가면 되었다.
첫 번째 전망대는 갈바람통 전망대였다. 상괭이라는 고래가 자주 출현하다고 적혀있었는데 우리는 '살쾡이'로 잘못 읽어 깜짝 놀랐다. 어제 본 바다와 하늘보다 더 멋진 색깔의 바다와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다. 망망대해란 이렇구나 싶을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평행하게 펼쳐진 하늘의 모습이 넋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풍경 사진과 단체 사진을 찍고 두 번째 전망대로 이동했다. 숲에는 동백나무가 곧게 뻗어 있었고 빨간 동백꽃이 바닥에 흐드러지게 떨어져 있었다. 제주도 '카멜리아 힐'에서 본 동백나무는 대부분 눈높이 이하의 크기였는데 이곳의 나무는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봐야 할 정도로 크다. 동백나무 숲이라 불러도 손색없을 정도로 많았다. 올려다본 나무 위에 꽃이 피어있다니 꼭 다른 나무를 보는 것처럼 어색했다. 왜냐하면 늘 보던 동백나무는 화분에 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엄마가 동백나무를 키우신 적이 있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오며 그 나무는 사라졌지만, 겨울에 피던 빨간 꽃이 인상적이었다.
동백나무 숲을 지나 산 정상을 향해 갔다. 걷다 보니 땀이 나기 시작해 겉옷을 벗어 들었다. 다들 두꺼운 겉옷을 하나씩 벗어 들고 경치를 감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었다. 매봉 전망대는 역시 산 정상이라 경치가 더 멋졌다. 하지만 발밑은 무서워 잘 쳐다볼 수 없었다. 먼바다와 하늘만 봤다.
금오도의 걷는 길을 '비렁길'로 부른다.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벼랑길'이란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길이 좁고 자칫 발을 헛디디면 산비탈 아래로 떨어질 것 같아 발에 잔뜩 힘을 주어야 하는 구간이 몇 곳 있다. '비렁출렁다리'를 건너 직포항으로 가는 길을 따라 다시 돌아왔다. 2시간 코스라고 했는데 정말 딱 12시에 도착했다. 아침을 거르고 걸어서 배가 무지 고팠다. 추천받은 상록수 식당으로 갔다. 식당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곳은 나름 그 섬의 '읍내'인 것 같았다. 우체국, 어린이집, 농협 하나로 마트 등이 모두 모여있었다. 이 작은 섬에 어린이집과 중고등학교가 있어 놀라웠다. 여수시에도 하나밖에 없다는 인문계 고등학교인데 섬에 있다니. 더구나 어린이집이 운영된다는 건 어린아이들이 있다는 의미인데, 섬의 명맥이 이어질 것 같아 괜히 반가웠다.
금오도의 점심식당도 역시 6첩 반상이었다. 우럭매운탕과 방풍 전을 시켰는데 방풍 전은 방풍을 메밀에 묻혀 부쳐서 고소했다. 머위나물과 방풍나물은 아주 신선했고 씁쓸한 맛이 좋았다. 풀을 쒀 만든 백김치도 맛있었고 매운탕은 좀 매워 밥을 연신 먹을 수밖에 없었지만 우럭 생선살이 부드럽고 맛있어서 자꾸 손이 갔다. 친구 한 명이 방풍 전에 막걸리를 마시자고 하여 막걸리 한 병을 시켰지만,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친구들이라 결국 마시자고 제안한 친구 혼자 한 병을 해결했다. 술이 아까워 다 마신 친구는 결국 체하고 배탈이 나 그날 저녁을 먹지 못했다.
거한 점심을 먹은 후 배를 타기 위해 다시 여천항으로 돌아왔다. 3시 출발 배편이라 여유가 많은 줄 알았는데 도착하니 2시 가까이 되었다. 점심에 방풍나물을 많이 먹은데다, 비렁길을 걸으며 방풍 밭을 많이 봤기 때문인지 항구 앞에 좌판을 펼치고 머위와 방풍을 파는 할머니들을 지나치기 어려웠다. 결국 친구 한 명은 머위와 방풍을 사고 나는 방풍만 샀다. 큰 봉투 하나에 5천원으로 이곳에서 나는 나물을 아주 싸게 산 것 같아 뿌듯했다. 방풍은 중풍을 방지한다고 해서 방풍이라고 한다는데 고지혈증으로 약을 먹는 내게 귀가 솔깃해지는 얘기다.
금오도에서 거한 점심을 먹고 여수시로 돌아와 전망이 아름답다는 스타벅스로 갔다. 드라이브 쓰루가 되는 매장이었고 루프탑에서 본 경치는 굉장히 이국적이었다. 파라솔, 하늘, 바다와 분위기가. 따스한 햇살아래 앉아 두런두런 수다를 떨며 느긋한 시간을 보냈다. 일요일 낮에 이렇게 멋진 스타벅스에 사람이 많지 않아 좀 의아했다. 서울이라면 사람들로 북적댈 텐데 아무래도 인구가 적은 곳이라 그런 것 같았다. 막걸리 마신 친구가 커피를 마시다 말고 결국 토하고 힘들어하여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은 한식 코스로 먹었다. 상을 세 차례 차려주는 코스인데 첫 번째 상에는 회, 장삼, 육회, 갓김치, 새우, 멍게, 해삼, 데친 문어, 전복회, 해파리냉채, 토마토 샐러드, 쥐포, 샐러드, 서대회, 흑임자 죽이 나왔다. 각자 먹지 못하는 음식은 놔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거의 다 먹었다. 두 번째 상에는 육전, 찐 새우, 표고버섯, 홍어삼합, 메로구이, 가오리 구이, 새우와 고구마튀김, 장어튀김, 단 맛 소스를 두른 인절미 떡, 뭇국이 나왔다. 홍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없었지만 두 명은 맛이나 보겠다며 한 점씩 했는데 의외로 맛있다고 했지만 다 먹지는 못했다. 인절미 떡에 묻힌 소스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그 소스 맛에 떡 맛이 더 풍부해져 맛있었다. 세 번째 상은 솥밥, 된장찌개, 방풍나물, 젓갈, 무나물, 김치, 간장게장 등 반찬과 갈치조림이 나왔다. 밥 양이 많지 않아 적당했고 가짓수가 많아 지레 겁먹었지만 4명이 한 입씩 먹을 정도의 양이어서 무리 없이 먹을 수 있었다. 이런 상차림이 1인당 4만 원인데 서울에서는 이 금액에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었다.
여수에서 네 끼를 먹었는데 세 군데 식당에서 간장게장, 양념게장이 나왔다. 여수가 게장으로 유명한 곳인가 의아할 정도였는데 토박이 사장님이 말씀하시기를, 꽃게장은 어렸을 때 많이 먹었지만 다른 게장은 잘 먹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자주 먹는 것 같다고 하셨다. 이유를 잘 모르시겠다고. 친구는 게장을 좋아하지 않는데 매번 상에 올라오니 맛이 궁금해 하나 먹어보겠다며 맛을 봤다. 기대한 것보다 짜지 않아 맛있다고 했다. 술 때문에 탈 난 친구가 좋아할 만한 산해진미를 우리만 먹어서 좀 미안하고 안타까웠지만, 체한 게 나으려면 굶는 게 상책이므로 어쩔 수 없었다.
저녁식사 후 여수 야경을 보러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국내 최초 바다 위를 건너는 해상 케이블카라고 한다. 무심코 탔다가 사진을 찍기 위해 뒤를 돌아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높아서.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서둘러 돌아앉아 앞만 봤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너무 무섭기 때문에. 덕분에 야경 사진은 친구가 찍은 사진을 올린다.
야경까지 야무지게 구경하고 숙소에 도착하여 렌터카 회사와 반납 절차를 확인했다. 연료를 빌릴 당시와 똑같이 채워놔야 하는데 우리 중 누구도 감을 잡지 못했다. 계약서에 빌릴 당시 숫자가 있기는 했지만, 얼마치를 넣어야 그 숫자만큼 채울 수 있는지 몰라 놔두기로 했다. 렌터카 회사에서 청구하는 대로 내기로 했다. 숙소에 돌아오니 아팠던 친구가 살아났다. 잠자고 났더니 개운해졌다고 말하는데 목소리에 힘이 넘쳤다. 늘 씩씩하고 밝은 친구가 회복되어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