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8
광장시장에서 전국 김밥 팝업스토어가 열린다고 하여 점심시간에 갔다. 그런데 팝업스토어를 도무지 찾을 수 없어 인터넷 검색을 했더니, 맙소사 4월 6일까지였다. 날짜를 잘 못 안거다. 할 수 없이 김밥 분식집을 찾았으나 녹두전, 국수, 생과일주스 등을 파는 집이 많았고 의외로 김밥 파는 곳이 눈에 띄지 않았다. 이쪽저쪽을 헤맨끝에 청계천으로 나가는 입구에 김밥, 떡볶이 파는 곳을 발견했다. 메뉴가 신박했다. 시래기 김밥. 후배는 비빔국수를 주문했다. 작은 포장마차 가게인데 한눈에 봐도 꽤 오랫동안 이곳에 터를 잡고 장사하신 것 같았다.
사장님 혼자 주문받고 만들고 서빙하고 설거지하고 바쁘셨다. 옆에 앉아있던 부부로 보이는 외국인 손님이 다 먹고 일어나더니 음식 테이블 뒤로 가서 휴대폰을 사장님께 보여준다. 한창 바쁜 와중 대충 휴대폰을 본 사장님은 손사래를 치시고 여자 손님은 돈을 내민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번역기로 뭔가를 얘기한 듯했다. 손님이 3만 원을 들고 있는데 사장님이 1만 원만 빼신다. 사장님이 거스름돈을 주겠다는데 한사코 안 받으려고 하며 또 휴대폰에 뭔가를 막 치다가 포기하고 그냥 가는 시늉을 한다. 사장님도 포기하고 잘 가라고 인사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 손님이 다시 오더니 2만 원을 싱크대 위에 훅 올려놓고 도망갔다. 사장님은 놀라 그 돈을 들고 뒤쫓으려 했지만 다리가 불편해 따라가실 수가 없었다. 사장님이 "나 다리 불편해서 못 쫓아가~" 라며 외치는 와중 손님의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가 허허 웃으며 인사를 하고 간다.
사장님은 2만 원을 1회용 젓가락과 컵이 놓인 테이블 끝에 아무렇게나 놓고 주문받은 음식을 다시 만드시며 궁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의 실랑이를 바라보던 우리한테 설명하셨다.
"대만에서 온 손님인데 올 때마다 우리 가게 들리는데 뭘 그렇게 사다 주는 거야. 내가 미안하고 고마워서 묵은지를 좀 싸줬거든. 그랬더니 저렇게 돈을 내고 가네"
사장님의 웃는 얼굴에 묻은 뿌듯함이 보기 좋았다. 나와 후배는 다시 정신없이 음식을 만드시는 사장님에게 2만 원 잘 챙기시라고 말씀드렸다.
"저렇게 사람 지나다니는 곳에 놔두시면, 지나가던 사람이 빼가도 몰라요. 잘 챙기세요"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누가 5만 원을 홀랑 가져갔다고 하시며 2만 원을 집어 떡볶이 판 아래에 툭 놓으셨다. 그 모습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선의를 믿는 태도였다. '누가 집어가겠나, 만일 없어져도 훔쳐간 사람에게 도움이 되면 좋지' 그런 말을 내포하는 모습으로 보였다.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따듯한 밥에 막 말은 야채가 먹기 좋았다. 시래기가 내 입에는 좀 물컹거렸지만 먹을만했다. 사장님이 김밥에는 원래 미역국을 주지 않는데 비빔국수를 시켰으니 내게도 준다고 하셨다. 후배는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먹더니 너무 맛있다며 이 집에 또 와야겠다고 했다. 표현을 잘하는 후배는 이제껏 먹은 비빔국수 중 최고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후배와 나는 미역국을 비롯해 그릇을 깨끗이 비웠다. 은행이체로 송금한 후 이체확인 화면을 사장님께 보여드렸더니 보는 둥 마는 둥 하시며 "입금됐다고 울리네요"라고 웃으신다. 선함이 얼굴에 묻어나는 사장님의 미소가 돋보였다.
불편한 다리로 온종일 좁은 공간에 서서 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지만, 태평한 표정으로 순서대로 천천히 하시는 모습에서 수십 년 일 해온 내공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혼자 바쁘게 움직이며 평온함과 친절함을 유지할 수 있는 그 엄청난 연륜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