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1
남부터미널을 처음 이용해 봤다. 가끔 그곳을 지날 때면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인가 의아해하며 다녔다. 겉모습이 너무 허름해서. 터미널 안에 들어서니 80~9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양 옆으로 늘어선 식당, 커피, 약국, 편의점 등 있을 건 다 있었지만, 대합실 의자는 여기저기 벗겨지고 테이프로 임시 처방한 곳이 많았다. 화장실은 너무 낡아서 이용하기 좀 꺼려질 정도였다. 고속터미널과 다르게 낙후된 시설을 그대로 놔두는 건, 곧 이 시설이 없어진다는 의미가 아닌지 궁금했다.
거제까지 프리미엄 고속버스를 타고 갔다. 프리미엄 버스는 처음 타는데 거의 항공기 비즈니스급 좌석이었다. 의자를 뒤로 젖힐 때 항상 뒷자리 앉은 사람이 신경 쓰였는데, 좌석마다 공간이 구획되어 뒤로 젖혀도 뒷좌석에는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아 좋았다. 게다가 리클라이너처럼 발받침이 펴져서 거의 누워갈 수 있을 정도로 의자가 펴졌다. 좌석마다 모니터가 있고 스마트폰 미러링,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등 다양한 기능이 많았는 데 사용하지는 않아 잘 되는지 모르지만 심심하지 않게 시간 보낼 거리를 제공했다. 휴대폰 무선 충전기는 충전이 고속으로 잘 되었다. 차량 연식은 좀 되어 보였는데 창문에 단 커튼, 좌석마다 달린 칸막이 커튼이 정겨웠다.
거제까지 4시간 걸렸다. 거제 버스 터미널에서 캐나다에서 온 친구, 춘천에서 온 친구를 만났다. 첫 직장 입사동기인 우리는 작년에 치앙마이에 같이 다녀온 후 거의 1년 만에 만났다. 캐나다에서 온 H는 먼 나라에 사는 것도 아닌데 너희끼리도 1년 만에 만나는 거냐며 깜짝 놀랐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는 것에 새삼 놀라며 정말 1년 만에 만나는 게 맞는지 더듬어봤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은 서로 자기 얘기를 하느라 정신없었다. 숙소에 들러 짐을 놓고 리조트 주변 산책로를 걸으며 얘기하고 이른 저녁을 먹으러 갔다. 멸치와 고등어 쌈밥을 먹고 일몰이 멋지다고 추천받은 카페로 갔다. 가는 동안 해가 다 지고 노을을 못 볼 것 같아 서둘러 갔는데, 해가 사라지며 남긴 흔적이 아직 아름다운 색으로 하늘을 물들이는 중이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에 넋을 뺏겨 카페에 들어가지도 않고 정신없이 사진을 찍었다.
영화 같은 배경으로 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한가한 카페에서 실컷 얘기를 나눈 후 숙소로 돌아왔다. 춘천에서 차를 가져온 Y 덕분에 편하게 이동했다. 숙소에 돌아와서도 끊이지 않던 얘기는 내일 아침을 기약하며 새벽 한 시에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