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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꿀빵

2025. 4. 12

by 지홀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침 하늘이 먹구름으로 흐렸다. 아침을 거하게 먹은 우리는 소화시킬 겸 산책을 했다. 리조트와 연결된 산책로를 따라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걷기 편했다. 하염없이 걸으면 산의 반대편 끝자락까지 걸을 수 있는 길이었지만, 체크아웃 시간을 감안해 중간에 돌아섰다.


우리는 내년에 장가계로 여행 갈 계획이다. 작년부터 2년짜리 적금을 붓는 중이다. 산책하며 내년 여행시기를 얘기하던 끝에 40주년 기념 여행을 가자는 의견이 나왔다. 은퇴하고 유럽 어느 도시에서 한, 두 달 살아보기를 하고 싶다는 H의 얘기에 내가 동조하고 나섰다. 고흐가 살던 프랑스 아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얘기를 하자 이탈리아 돌로미티라는 곳이 좋다는 말이 나왔다. 우린 프랑스 한 달, 이탈리아 한 달 살아보기를 하자며 의견을 모으고 내년부터 월 20만 원씩 모으자고 결의했다. 즉흥적인 얘기들이 오갔기에 실천할지는 미지수이지만, 내년 장가계를 다녀온 후 회비를 모으기 시작하면 28년에 갈 수 있을 것이다. 혹여 유럽까지 못 가더라도 2028년, 우리가 만난 지 40주년이 되는 해에는 어디든 기념 여행을 갈 거다.

흐리지만 상쾌한 바람부는 아침(10:23, 11:51, 12:29)

거제도에 차를 타고 와서인지 섬이란 느낌보다 육지 같다.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였는데 고개를 돌리면 바다가 보이는 광경이 신기했다. 몽돌해변에 거의 15년 만에 갔다. 다른 친구들도 아주 오랜만에 와본다고 한다. 모래사장 하나 없이 돌로만 이뤄진 해변. 돌을 가져가지 말라는 경고 현수막이 크게 붙어있다.


친구들과 셀카를 찍다가 세 명이 함께 온듯한 일행에게 단체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했다. 휴대폰을 받아 든 분은 카리스마 넘치는 어조로 뒤로 돌아서 포즈를 취하라고 했다. MZ들의 포즈를 잘 아는 분이었다. 찍어주신 사진을 보니 키도 커 보이게 잘 찍어주셨다. 우리들은 감탄을 하며 "찍어드릴까요?"라고 물었는데 쿨하게 괜찮다며 가셨다.


몽돌해변에 온 사람들 중 대부분이 우리처럼 여자친구들끼리 온 일행이 많았다. 부부로 보이는 커플과 유튜브를 찍는지 단체 댄스를 하는 청년들이 있었지만, 희한하게 5~6명의 일행끼리 모여 다니는 여자들이 눈에 띄었다. 연령대는 우리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였다. 그중 한 일행이 우리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우리 중 제일 사진을 잘 찍는 M이 휴대폰을 받았다. 아주 친절하게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어드렸는데 감탄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웃으며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는데 얼마 못 가 다른 일행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우리가 잘 찍어주는 것 같다면서. M이 다시 휴대폰을 들고 열심히 찍어드렸다.


해변을 한참 걸은 후 몽돌에 앉아 뒷모습을 찍자고 얘기했다. M이 어떤 일행에게 요청을 드렸는데, 사진을 찍어준 일행이 자신들도 뒷모습을 찍어달라고 했다. 우리가 찍은 모습을 따라 하고 싶다고 하시며. M이 왼팔을 드세요, 오른팔을 드세요 하며 여러 포즈를 재미있게 찍었다. 귀찮다는 표정 없이 열과 성을 다해 찍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아 M의 사진 찍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비구름이 몰려온다(12:30, 12:33, 12:47)

리조트에서 아침에 뷔페를 하도 많이 먹어 점심을 먹지 않기로 했다. 몽돌해변에서 소화를 좀 시킨 후 경치 좋은 카페에서 또 수다를 나누었다. 제과 기능장이라는 팻말이 붙은 카페여서 빵을 먹지 않고 지나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아침을 캐나다에서 온 H가 샀다. 남편이 휴스턴으로 발령나 떨어져 지내게 되었다고 했다. 퇴직해서 하루 24시간 거의 같이 있어야 하는 나이에 주말부부, 아니 한 달 부부가 되어 좋다고 했다. 그만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니 행운이라고. 그래서 밥을 사고 싶다고 했다. 캐나다에서도 지인들 밥을 사주었다면서. H는 우리에게 행여나 얻어먹는다는 생각에 "사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얻어먹었다. 그런데 춘천에서 차를 가져온 Y가 남편이 생전 처음 안 하던 일을 했는데, 여행 오는 날 화장대에 돈을 놓고 나가며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했단다. 우리는 Y 남편의 성의를 생각해 카페에서 인증숏을 찍고 잘 먹겠다는 인사를 전했다.


카페에서 나와 통영으로 이동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예보는 돌풍, 비바람이 분다고 했는데 바람은 강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E가 통영에서 유명한 꿀빵을 사야 한다고 해 중앙시장으로 갔다. 공영주차장에 어렵사리 주차를 하고 동피랑을 구경한 후 꿀빵이 모여있는 시장으로 갔다. 빵을 자제하기 힘든 나는 시식코너를 지나치지 못하고 다 먹어봤다. 빵 안에 들어간 내용물이 집집마다 조금씩 달랐다. 다 맛있었다. 팥, 유자, 흑임자, 고구마 등등. 숙소에서 후식으로 하나씩 먹을 요량으로'호두모찌'빵을 한 박스 샀다. 그런데 M이 한 꿀빵집에 들어가더니 집에 하나씩 기념으로 가져가라며 꿀빵 한 박스씩을 안겨주었다. 얼결에 선물을 받았다. 친구들이 "너는 왜 사주는 거냐?"며 이유를 물었는데 별 말없이 "그냥 기념'이라고만 말을 했다. M의 아버지가 작년 추석 무렵에 돌아가셨는데 그 소식을 우리에게 뒤늦게 알렸다. 아마도 조의를 표한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것 같았다.


점심을 걸렀기에 5시 30분쯤 저녁 식당에 갔다. 굴의 도시답게 굴밥정식을 파는 곳이었는데 우린 전복솥밥 정식으로 통일한 후 굴전을 시켰다. 식당 직원은 생뚱맞은 일이라도 당한 표정을 지었다. 식탁에 '열기'라는 생선이 나왔는데 처음 먹어보는 생선이다. 살은 부드러웠는데 맛이 별로 없어 손이 가지 않았다. 대신 굴 탕수육, 어묵, 무채를 비롯한 각종 나물이 맛있었고 전복솥밥은 버터를 두른 듯 고소했다.


총무를 맡은 내가 계산하려는데, 이번에는 E가 이미 계산했단다. 딸이 여행 잘 다녀오라고 용돈을 줘서 샀단다. H는 이럴까 봐 부담 갖지 말고 아무도 사지 말라고 했는데, 이렇게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면 자기가 한 턱 쏜 일이 빛바랜다는 농담을 했다. 우리는 너의 빛은 바래지 않았다며 웃었다.


숙소로 돌아와 사우나에 갔다. 8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여 후다닥 들어가 재빨리 샤워하고 탕에 몸을 담근 후 서로 등을 밀어주고 열심히 때를 밀고 나왔다. Y와 나는 곧바로 미리 예약해 둔 발 마사지를 받았는데 Y는 아프다고 끙끙댔지만, 난 시원하지도 않고 아프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별로였다.


잘 먹고 잘 씻은 하루였다. 우린 또 12시가 넘도록 얘기했다. 호두모찌빵은 아침에 먹기로 했다. 저녁까지 많이 먹은 덕택에 후식을 소화할 배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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