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6
비가 심상치 않게 온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에 비가 많이 온다. 따스한 햇살과 초록, 초록한 나뭇잎, 쨍한 파란 하늘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나날이 이어져야 하는데 그런 날은 며칠 만나지 못했다. 쌀쌀하고 우중중한 날이 더 많다. 오늘도 출근길에 비가 멎는 것 같더니 갑자기 많이 쏟아지고 점심에도 그친 것 같아 우산을 들고나가지 않았는데 느닷없는 폭우가 내렸다. 오후에는 천둥소리 요란하게 번개까지 치며 비가 창을 두들겼다. 왜 그런지 올해는 비가 많이 올 것 같다. 비 오고 습하고 더운 여름. 그런 날 실내는 에어컨으로 추운 여름. 매년 경신하는 날씨 기록. 몇십 년 만에 오는 가장 더운 날, 강수량이 많은 날, 비 오는 날이 많은 여름, 수십 년 만에 온 가뭄, 산불, 강추위 등등.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걱정이 앞선다. 이런 날씨에 대처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무력함만 느낀다.
기후가 좋은 곳으로 떠나는 기후난민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구상에 과연 그런 곳이 남아 있을지 궁금하다. 홍수, 가뭄, 지진, 산불, 화산폭발이 이 세상 어디에선가 일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빈도수가 적은 곳이 있을 수 있겠지만, 많은 사람이 몰려간다면 그곳도 별반 다르지 않은 세상이 될 것이다. 난민을 받는 문제는 그래서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다. 인류애적 인도주의적 가치를 우선할 것인지, 자국민의 이익을 우선으로 할 것인지 고려해야 하고 어느 쪽도 옳다, 틀리다로 나누기 어렵다. 다만, 어려운 처지의 남을 도우려면 내가 먼저 건강해야 도울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으려면 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점이다. 내가 힘들고 괴로우면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내 것이 보장된다고 느껴야 보장된 것 이외의 여분을 나눌 마음이 생긴다. 그렇지 않다면, 박애주의자가 아닌 다음에는, 선뜻 어려운 이의 손을 잡기가 쉽지 않다. 이건 인간의 본성이므로 좋다, 나쁘다로 단순하게 판단할 수 있지 않다. 그저 바라는 것은 어려운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고, 가장 바라는 것은 기후난민이 되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