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8
게스트 하우스와 와인바를 운영하며 살사 댄스를 수준급으로 추는 M이 톡을 보내왔다. 직장인극단 공연에 초대받아 연극을 봤다면서 아는 극단인지 물어왔다. 직장인 극단인데 배우들이 연기를 잘하더라면서. 들어보니 아는 극단이었다. 직장인 극단 연합 모임(일명 직연협)이 있는데 그 연합에 속해있는 극단이었다. 직연협은 매년 가을에 공연 기간을 정해 서로 품앗이 관객을 하고 그 해 공연 중 연출상, 배우상 등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몇 년에 한 번씩 연합 공연을 무대에 올리기도 한다. M은 살사 댄스 동아리에서 같이 활동하는 분이 초대하여 가게 되었다고 하는데 댄스 동아리에는 이번에 들어간 분으로 연기를 오래 하신 것 같다고 전했다.
연극배우로 무대에 서고 싶다면 누구라도 쉽게 시작할 수 있다. 연기를 못해도 괜찮다. 코칭과 연습으로 어느 정도 수준까지 연기력을 올릴 수 있다. 시간과 열정만 있다면, 프로배우가 될 것이 아니라면, 취미로 할 수 있는 곳은 많다. 요즘에는 기성극단이나 기획사가 '무대에 서보고 싶은' 사람을 대상으로 프로덕션을 꾸려 체계적으로 연기를 가르치고 무대에 설 기회를 제공한다. 이런 경우 수강료와 참가비가 100만 원을 훌쩍 넘는다. 버킷리스트를 이루려는 사람에게는 일평생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일이다. 일회성이 아니라 연극이 좋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아마추어 극단에서 활동한다. 연차가 쌓이면 극단 내 활동뿐 아니라 자치구 지원 연극축제 같은 외부 활동에도 참가하고, 연극계에 네트워크가 생기면 프로 연출과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고 프로 무대에 서는 기회를 갖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극단 활동을 하는 주목적은 배우를 하기 위해서다. 간혹 작가, 연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추어 극단은 각자 가진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곳이다. 평가로 좌절감을 안기기보다 단원이 직접 쓴 희곡으로 공연을 하고, 하고 싶은 작품으로 연출하는 등 바로바로 결과물을 낼 수 있어 자존감이 올라간다. 우리 극단은 20년간 약 134편의 작품을 공연했고 그중 창작극이 약 23편이다. 능력자들이 많다. 공연을 하고 나면 단원끼리 그간의 고생을 격려하며 자신감을 심어준다. 배우로 무대에 설 때도 꽤 큰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연습할 때는 괴롭고 힘들고 연출과 배우라는 입장 때문에 갈등이 생기기도 하지만, 무대를 마치고 나면 서로 칭찬하기 바쁘다. 관객들도 주로 배우의 지인들이 많으므로 작은 실수나 어색한 연기는 모두 이해받는다. 때로 관객의 이런 너그러운 분위기가 연기력 향상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프로 배우가 되려는 게 아니면 그다지 큰 고민거리는 아니다. 연기력 향상을 하고 싶은 단원은 따로 연습을 맹렬히 하고, 그 결과는 눈에 띄게 보인다.
나는 가끔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하고 무대에 서는 악몽을 꾼다. 상대배우들은 당연히 내가 다 외웠을 거라고 믿는데, 무대 뒤에서 나 혼자 초조해한다. 공연이 시작되면 겨우 앞부분 대사만 하고 그다음 대사를 못한다.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 말도 못 한다. 꿈속인데 '이건 꿈일 거야'라고 외친다. 대사를 외우지도 않고 무대에 서는 강심장이라니, 무대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린다. 그렇게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에서 깬다. 무대를 앞둔 시점도, 연습하는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가끔 그런 아찔한 꿈을 꾼다. 배우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저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것일까? 무대에 서는 일은 긴장되고 떨리지만 끝내고 나면 그 희열이 크다.
극단의 20주년 기념공연 배우 모집 중이다. 하고 싶은 배역을 신청하여 오디션에서 연기를 시연한다. 오디션을 통해 배역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캐스팅하는 과정이 재미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배우 지원 하려는 단원들이 많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아직 지원자가 많지 않다. 마감하려면 2주나 더 있어야 하므로 그 사이 지원자가 늘어날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