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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

2025. 5. 27

by 지홀

얼마 전 퇴사한 후배로부터 점심 먹자는 연락을 받았다. 육아 때문에 퇴사를 결정했던 후배다. 아이가 한 명일 때는 어렵게 일을 병행했지만 두 명이 되자 감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친정, 시댁 모두 도와주실 수 없는 형편이라고 했다.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다. 최근에 도슨트 교육을 받으러 일주일에 두 번 시내로 온다고 한다. 2년 전에 옛 동료들과 깜짝 점심을 한 이후 처음이다. 회사 다닐 때는 친하게 지내도 퇴사하면 만나기 어렵고 꾸준히 연락하며 지내기 쉽지 않다. 각자의 생활에 빠져 지내다 보면 잠시 잊고 지낸다. 그러다 불현듯 떠올라 안부를 묻고 만나 얘기하고 밥 먹고 헤어지며 "자주 연락하자"라고 하지만, 또 각자 일상을 보내느라 각오만큼 자주 만나지 못한다. 그런 참에 후배에게서 연락이 온 거다. 반가웠다. 점심 먹을 날짜를 약속한 다음 날 거래처로부터 그 후배의 평판을 알아보는 연락을 받았다. 신기했다. 나하고 점심약속한 줄 어떻게 알았는지. 당연히 좋은 얘기를 했다. 똑 부러지게 일하는 후배였으므로 나쁘게 얘기할 이유가 없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만난 것처럼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다. 후배에게 점심 먹자고 연락 줘서 고맙다고 했다. 잊힌 사람인 줄 알았다가 아닌 것을 알게 될 때의 기쁨이 있다. 그렇지 않아도 회사에서 점점 잊히는 사람이 되어가는 듯해 심적 타격이 좀 있는 와중이어서 더 반가웠다. 후배는 언니 같은 사람인데, 왜 잊겠냐며 정색했다. 옛날 일을 상기하며 웃고, 말한 줄도 몰랐던 나의 사적인 얘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고, 후배가 지금 듣는 도슨트 프로그램이 뭔지 얘기를 나누며 최근 평판조회가 왔었다는 말을 해줬다. 후배는 깜짝 놀랐다. 정직원도 아니고 계약직 자리인 데다 육아휴직자 대체 자리여서 7개월 밖에 일할 수 없는 자리라고 했다. 근무기간이 짧지만, 다시 일할 수 있는 시작점으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자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며 일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회사에서 후배가 일하는 걸 보면 마음에 들어서 육아휴직자가 돌아오더라도 다른 자리를 제안하게 될 거라며 응원했다.


중, 고등학교부터 치열하게 공부해서 대학을 나와 취직하고 일을 한창 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는 여성이 육아 때문에 회사를 관두는 일이 종종 있다. 그런 일을 볼 때마다 안타깝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잠 못 자고 못 먹고 공부했는가를 되짚어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지 않는가 싶다. 최소한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커리어를 쌓아야 하지 않을까. 후배처럼 육아에 전념했다가 다시 일자리를 찾게 되면 정말 잘 된 일이지만, 재취업이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고 보면, 학생 신분을 벗어나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사람, 경력단절된 사람, 정년퇴직한 사람 모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같은 고민이지만 처지와 상황이 다르므로 고민의 깊이와 선택의 폭은 다를 것이다. 흠, 공통된 것은 흥미와 재미를 느끼는, 즐거운 일을 찾는 것이다. 그래야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좀 더 꿋꿋하게 잘 보낼 수 있을 테니.


오전에는 기운 없었지만 점심먹고 기운나자 하늘마저 예뻐보였다. (10:34, 15:41, 15:41)
좀 더운 오후였다 (15:45, 17:14)
저녁에는 다시 선선한 바람이 좀 차갑게 느껴졌다. (19:2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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