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8
왜 노을이 아름다운지 잠깐 스치듯 생각한 적 있는데 이어령 선생이 답을 주셨다.
"다가오는 어둠 속에 아직 빛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어령의 말"이라는 책에 실려있다고 한다. 읽지 못했는데 펀자이씨 툰(@punj_toon)에서 봤다. 태양이 지구의 반대편으로 넘어가며 세상이 온통 어두워질 때 마지막 빛을 남기는 시간. 찬란한 빛이 점점 사그라들며 어두움과 섞여 오묘한 색을 발하는 시간. 사라지는 빛의 인사. 그래서 노을이 아름답게 느껴지나 보다. 마찬가지로 어두움이 물러나고 빛이 드러나는 일출의 시간도 같은 이치로 아름다운가 보다. 사라지고 나타날 때 "안녕"이라고 말하는 빛. "안녕"이라고 말하며 웃으며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유퀴즈 온 더 블록"에서 펀자이씨 툰을 그리는 엄유진 씨 편을 봤다. 그녀의 유쾌한 가족 얘기를 듣다가 인스타그램을 찾아보고 책까지 찾아봤다. 몇몇 만화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지고 뭉클해졌다. 같은 상황이어도 사람마다 대처하는 방법, 마음자세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지만 어쩌면 이리 밝고 즐겁게 반응할 수 있을까. 이건 선천적인 것 같다. 아무리 교육받고, 성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 해도 태어나기를 심각하게 태어난 사람은 유머와 재치를 장착하기 어렵다. 선천적인 건 유전자가 몸 안에 있다는 것일 테고, 웹툰을 그리는 엄유진 작가의 유전자에는 부모가 물려준 DNA가 있을 것이다. 유쾌한 DNA.
중학교 때 내가 얼마나 심각한 사람인지를 알았다. 그때 좌우명을 "웃는 얼굴, 밝은 마음"이라고 정했다. 친구들이 농담하면 곧잘 웃었으나 유머를 만들어 낼 수 없었다. 내가 만들지 못하면 웃긴 얘기를 전달이라도 하자 싶어서 난센스 퀴즈 같은 재미난 것들을 공부하듯 여러 번 적으며 외우려고 애썼다.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친구들에게 기억했던 웃긴 얘기를 하면 반응은 늘 시원치 않았다. 나만큼 웃지 않았다. 콘텐츠의 문제가 아니라 전달자의 문제였다. 다른 사람이 말하면 웃긴데 내가 말하면 웃기지 않으니 점점 자신감을 잃었다.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웃긴 얘기를 기억하지 않았다. 그냥 나 혼자 웃고 말았다.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 웃긴 얘기를 집에서 한 적도 없다. 부모님이 웃을 거라는 상상을 못 했다. 유머 코드가 약하다. 유머를 다큐로 받는 기질은 유전이다.
밝고 유쾌한 사람이든 어둡고 심각한 사람이든 질병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없다. 다만 그 힘든 과정을 보다 잘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은 아무래도 밝고 웃음이 많은 사람일 것 같다. 그녀의 웹툰을 몇 개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부모님을 돌보는 일이 힘들 텐데 웃음으로 승화시키고 깨달음을 얻는 기회로 삼는다. 덩달아 웹툰을 보는 나는 마음이 따듯해지고 미소를 짓게 되고 나를 돌아보며 성찰하게 된다. 그녀의 책을 사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