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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있음

2025. 6. 2

by 지홀

어제는 여름처럼 덥더니 오늘은 가을처럼 쌀쌀하다. 늦은 아침부터 비가 오더니 점심시간에 우산을 들고나가야 했다. 한국전력 구내식당에 가보기로 한 날인데 먼 거리를 우산 쓰고 가기가 살짝 귀찮았다. 하지만 순례단 일행이 있어 포기할 수 없었다. 최대한 비를 피하기 위해 지하도로 갔다. 일행들은 길을 몰라 어디로 가는 거냐는 질문을 중간에 여러 번 한다. 나는 "나만 따르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앞서 걸었다. 이곳도 외부인은 12시 10분부터 입장 가능했다. 가격은 6,000원. 명동성당 구내식당보다 500원이 비싸다. 식권을 구입하고 식판을 들려는데 직원이 미안한 표정을 짓고 말한다.


"밥이 다 떨어져서 드실 수가 없어요"


세상에. 식당에 밥이 떨어지다니. 겨우 12시 10분인데. 6월 3일 대통령 선거일, 6월 6일 현충일이 있어 이번 주 휴가 낸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식당에서도 그랬나 보다. 밥을 적게 준비한 것 같다. 거기에 한국전력 직원보다 외부인이 더 많아서 예측하기 어려웠을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점심시간이 많이 지난 것도 아닌데 밥이 없다는 말에 황당했다. 구입한 식권은 다른 날에 사용해도 된다고 안내받은 후 한진해운 구내식당으로 갔다. 그곳은 빌딩 꼭대기에 위치하여 전망이 일품이었다. 가격은 6,500원. 우거짓국이 특히 맛있고 반찬도 먹을만했다. 회사에서 오기에는 좀 멀긴 하지만, 하루 8,000 천보 목표를 달성하기에 안성맞춤인 거리다.


비올 것 같이 어두워지더니 점심때 비가 내렸다(08:35, 13:14, 13:49)


점심 식사 후, 아주 오래간만에 사업부서 팀장, 차장이 올라와 조언을 구한다. 업계 생태계를 설명하며 조언을 해줬는데 내가 살아있는 걸 느꼈다. '자율신경'에 문제가 있다는 말을 들은 후 열흘 만에 처음으로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이다. 저녁에 필라테스를 하는데 몸 컨디션도 좋았다. 현업에서 빠지고 직원들과 접점이 점점 없어지자 소외감이 들어 은근히 힘든 와중, 문제 해결에 필요한 여러 조언을 하자 생기가 돈 것 같다. 사실, 정신 차리지 못할 정도로 일하다가 여유가 생기니 좋다. 사업을 맡은 건 없지만 할 일이 많아서 시간이 엄청 빨리 가고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하는 날이 많다. 그럼에도 홀로 떨어져 있기에 정서적 고립감이 있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몸이 아픈 거로 나타났는데, 마음에 작은 생기가 돌자 몸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구내식당 순례단"은 비록 세 명이지만, 내게 작은 활력을 준다.


오늘은 다시 가을날씨(13:5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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