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1
아주 가느다란 붓으로 눈에 보일락 말락 한 모양을 그린다. 자세히 그리면 그릴수록 극사실에 가까운 그림이 되어간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면 무아지경에 빠졌다 나온 느낌이 가끔 든다. 2~3시간을 몰두해서 그렸는데 진척이 별로 없는 것 같아 허무하다가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휙 지나가버려 놀랄 때가 많다. 화실에 다른 수강생들이 그린 그림이 있다. 사진 같은 그림을 보며 판다의 털 하나하나를 세필로 다 그리는 동안, 얼마나 몰입해서 그렸을지 상상이 간다. 실사와 똑같은 유명인의 얼굴을 보며 눈썹 하나, 머리카락 한 올을 그리며 이 사람도 무아지경을 경험했겠구나 짐작할 수 있다. 잘 그리지 못하면서 매주 그림 그리는 시간을 가지려는 이유가 '몰입'이다. 흡사 명상과 같음을 요즘 더욱 느낀다.
그런데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림 명상'이라고 하면 그림을 보면서 힐링하는 느낌이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 몰입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흐르고 무념무상의 상태가 되며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의미를 담은 표현, 단어가 궁금하여 AI에게 물어봤다. 걷기 명상, 호흡명상처럼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있는지. 카피라이터가 된 것처럼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몇 가지 재미있는 표현을 알려준다.
일단 챗지피티가 이렇게 키워드를 정리했다. 내가 표현하고 싶은 핵심 내용이 다 들어있다.
� 키워드 재정리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
몰입 상태 (flow)
시간 감각 소멸
잡념 사라짐 / 내면의 평온
결과보다 과정 / 비계획적 표현
명상에 가까운 정신 상태
그림치유는 이미 많이 쓰고 있는 말이고 마음을 다스린다는 점에서 가장 근접한 말이지만,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말은 아니다. 좀 유사한 건 "그림멍"이란 표현이다. 불멍, 물멍, 숲멍, 빛멍이란 단어처럼. 딱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만하다. 다만 이것도 그림을 보면서 멍 때리기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리는 행위에 집중하는 표현을 물었더니 이렇게 정리해 준다.
창작으로 "무화지경"이란 단어를 비롯해 "그림명경", "화멍지경", "붓 끝 명상", "화선명상(畵禪冥想)"이란 단어를 추천한다. 인공지능이 센스를 발휘했다. 무아지경에서 무화지경을 만들어 내다니.
인공지능과 한 시간 가까이 의견을 나누며 직관적으로 바로 이해되는 단어를 만들려고 했으나 역부족이다. 단순하게 "그리기 명상", "드로잉 명상"이란 말이 직접 그리면서 명상한다는 의미를 담아 제일 나은 것 같다. "드로잉 명상 클래스"식으로 원데이 클래스를 변형하여 만들면 꽤 괜찮은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을 듯하다. 단순한 미술수업이 아닌 명상을 하는 수업. 그림이든 걷기든 호흡이든, 심지어 음식을 만드는 일도 몰입하는 그 순간만큼은 모두 무념무상, 무아지경의 시간이므로 다 명상이라고 봐도 괜찮을 것 같다. 무엇이든 몰입 후 찾아오는 마음의 평화, 복잡했던 마음을 차분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으므로 요즘 유행하는 원데이 클래스를 명상 클래스로 명명하면 더 잘 될 것 같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마음 챙김'을 원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