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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짓거리

2025. 6. 8

by 지홀

브런치에서 글을 연재하다가 출간작가로 변신하는 분들이 진짜 많은데 노한동 작가도 그중 한 명이다. "사무관은 이름이 없다"라는 브런치북을 연재할 때 내용에 크게 공감하며 아주 재미있게 읽었고 동료들에게 권하며 반드시 책으로 나올 것 같다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교보문고에서 우연히 책을 발견했다.


"사무관은 이름이 없다"라는 연재였는데 책 제목은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이라는 책이다. 정치분야 베스트셀러로 올라있다. 공무원 생활 10년간 느낀 관료주의의 민낯을 얘기한 그 책 내용 중 가장 크게 와닿은 단어는 '헛짓거리'라는 단어다. 공무원이 하는 일의 대부분이 헛짓거리라는 일갈은 속이 다 후련해질 정도였다.


처음 공무원과 일할 때 두 가지를 알았다. 하나는 공무원이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일을 상당히 많이 한다는 것이고, 하나는 쓸데없는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일이 많아서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아주 열심히 그것도 성실히 한다. 공무원이라고 하면 안정적으로 일하면서 워라밸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근무시간이 길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그런데 왜 바쁜가 들여다보면 굉장히 생산적이지 않은 일을 하느라 시간을 보낸다. 주로 해결책을 찾지 못하는 간담회를 비롯한 각종 회의와 그에 따른 회의 보고서 작성과 후속 계획서 작성으로. 인사발령 시즌마다 바뀌는 윗사람을 공부시키기 위해 해당 분야 전문가를 모시고 간담회를 거의 매년 똑같이 하지만, 그 윗사람이 뭔가 좀 알고 이해할 때쯤 다른 곳으로 발령 난다. 그것이 반복되다 보면 간담회는 정말 "했다"로 끝난다. 할 도리 했다, 궁금해하는 거 알아볼 기회를 가졌다로 만족한다. 업계, 학계에 있는 사람들도 처음에는 큰 기대를 갖고 참석하지만 나중에는 참석하기 어렵다고 하고, 분위기 모르는 처음 오는 분들은 각종 민원성 발언을 잔뜩 얘기한다. 당장 어찌할 수 없는 정제되지 않은 얘기들을.


좀 의욕을 갖고 뭔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공무원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 제풀에 꺾이기도 한다. 그래서 복지부동, 낙지부동하게 된다. 해결한다고 월급이 오르고 칭찬받는 것도 아니고 해결하지 않는다고 월급이 깎이고 욕먹는 것도 아니므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 된다.


공무원 사회를 옆에서 보며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갑자기 보고서를 내라는 경우다. 지금은 공무원 사회에도 MZ 세대가 입사하기 시작해서인지, 예상치 못한 일이 떨어지는 경우가 덜해졌지만, 미리미리 고지해도 될 일을 항상 임박해서 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고서를 내야 하는데 내용이 없으니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소설을 써야 하므로. 보고서를 잘 쓰는 사람이 있는데 언뜻 보면 양식이 완벽하다. 글씨체와 폰트, 여백 등 나무랄 데가 없다. 그런데 읽어보면 알맹이는 없다. 두리뭉실하고 포괄적인 단어의 나열. 보도자료 배포된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뭔가 하겠다고 선언한 보도자료 후속으로 실제 이뤄진 건 몇 건이나 될지. 그리고 새로운 리더가 올 때마다 MOU는 왜 그렇게 많은지도.


모두 '열심히 일 했다'를 보여주는 퍼포먼스다. 잘했다가 아니라 그냥 열심히 했다. 유관기관과 MOU 맺느라 열심히 일했고 간담회 개최하고 보고서 쓰느라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헛짓거리'라고 표현한 노한동 작가의 얘기는 속 시원하면서 걱정스럽기도 했다. 이렇게 공무원 사회를 까발려도 괜찮을까? 만일, 그가 아직도 공무원이었다면 쉽게 말하지 못했을 내용일 것이다. 누구나 그 사회를 벗어나면 좀 더 객관적이고 냉정한 눈으로 보고 말할 수 있고 그만큼 두려움도 덜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누워서 침 뱉기'가 되므로. 아직 조직에 몸 담고 있는 동안은 적나라하게 말하기가 쉽지 않다.

덥다, 너무 덥다 (13:51,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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