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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몰라

2025. 6. 7

by 지홀

가끔 나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실은 아주 많이 어린 사람이라는 걸 알고 나면 화들짝 놀라게 된다. 속으로 '아니 왜 저렇게 늙어 보인대'하며. 잘 모르는 사람을 겉모양으로 보며 대체로 나보다 나이 많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상대방이 나이 들어 보이는 이유는 그들이 '노안'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생각하는 나의 심적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다. 매일 거울을 보며 늙어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20대, 30대이기 때문에 남의 눈에 내가 얼마나 나이 들어 보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 제 나이로 보일뿐인데 말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언니가 60대 후반이란 걸 깨닫고 어안이 벙벙해지는 것과 같다.


'아니, 왜? 갑자기 세월이 건너뛴 거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친구는 아이들이 너무 정확하게 말하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다며 흰머리가 조금이라도 보이기 전에 염색해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이 "할머니"라고 부른다고.


얼굴에 탄력을 잃고 매일 주름이 늘어나는 얼굴을 보며 의기소침해지다가도, 잘 차려입고 화장하고 나가면 "그 나이로 보이지 않아요"라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홀딱 믿어버리고 정말 그런 줄 안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무슨 20대나 30대, 아니 40대로 보인다는 말도 아닌데 혼자 아주 인심 팍팍 쓰며 진짜 젊다고 착각한다. 그래서 40대 남자를 보고 나 보다 나이 많은 줄 알거나 내 또래라고 착각하며 괜히 설렐 때가 있다. 어떤 때는 '열 살 연하면 어떤가, 나는 젊어 보이니 괜찮지 않나?'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질 때도 있다. 그러다가 뒤통수를 얻어맞고 정신 차리듯 번쩍 깨어난다. 초등학생들이 말하는 "할머니" 소리를 들을 나이가 맞다면서.


남들은 다 내 나이로 보는데 나만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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