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질 때

2025. 6. 14

by 지홀

노트북 비밀번호가 또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쓸만한 비번을 여러 개 눌러봤으나 어느 것도 맞지 않는다. 다시 유튜브를 찾아 시도했으나 지난번과 똑같은 문제에 봉착했다. 오른쪽 하단의 전원 버튼을 시프트 누르고 클릭해서 껐다 켰다를 반복하다가 그 옆에 있는 ‘접근성’ 아이콘을 클릭해 봤다. ‘어라?’ 도스 화면이 뜬다. ‘도스 화면이 뜨면 안 되는데!’ 난감해하며 습관대로 네이버에 물어봤다가 유튜브 검색을 하다가 문득 chatGPT가 생각났다. 뭐든지 다 알고 있는 인공지능에게 컴퓨터 증상을 얘기했더니 아주 찰떡같이 알아듣고 해결책을 알려준다. ‘접근성’ 아이콘을 눌렀을때 도스화면이 뜨는 것은 해킹 의심이 된다고 한다. 누군가 암호를 풀려고 우회 시도했을 것이라고 한다. 카페에서 공용 와이파이를 사용할 때 그런 것 같다. 어쩐지 얼마 전부터 크롬이 연결되지 않아 이상했다. 네트워크의 문제인가 했는데 엣지는 연결이 되어 네트워크 문제는 아니었다.

과연, 인공지능이 똑똑하고 편리하다. 검색을 이리저리 하지 않고 질문했더니 단박에 알려준다. 도스 화면이 열리는 건 비정상적이지만, 그 화면을 활용해 바탕화면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명령어를 알려준다. 그대로 쳐보니 된다. 백신으로 바이러스 검사, 악성코드 검사를 했으나 문제없다. 그럼에도 접근성 아이콘을 클릭하면 계속 도스 화면이 뜬다. 인공지능은 심각한 위험이라며 초기화할 것을 권장한다. 파일을 백업한 후 초기화했다. 평소 본체에 저장한 파일이 많이 없어 다행이다. 초기화하자 크롬도 정상적으로 접속되고 ‘접근성’ 아이콘의 기능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한글을 비롯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은 다시 설치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남았지만, 일단 글을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 하루 종일 글쓰기가 목표였는데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초기화하는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윈도우 10이 10월에 종료된다고 한다. 윈도우 11로 업그레이드하라고 하는데 노트북 사양이 맞지 않아 못하고 있다. 노트북 산 지 10년쯤 되었다. 아주 멀쩡하게 잘 써서 사양만 업그레이드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새로 구입해야겠다. 노트북이 큰 편이기도 하고, 비밀번호로 두 번 고생하고 나니 ‘이 아이와 헤어져야 할 때구나’ 싶다.


모든 건 인연이 있다고 믿는 편인데 물건도 그렇다. 애착 가는 옷, 가방, 신발 등이 있는 반면에 금방 마음이 식는 물건이 있다. 마음이 가는 일에 가격은 무관하다. 비싸게 주고 샀어도 손이 가지 않는 물건은 몇 년이 지나도 그렇다. 버리기 아까워 보관만 하고 있을 뿐. 십 년 넘게 입은 옷을 아직도 즐겨 입는가 하면, 작년에 산 옷인데도 안 입게 되는 옷이 있다. 열심히 애정을 쏟아 잘 입고 들고 신고 다니던 물건과 헤어져야 할 때도 있다. 너무 낡아서일 때도 있고, 몸에 맞지 않아서, 나이와 맞지 않아서 등등의 이유로. 좋아하던 구두를 이제는 조금만 신어도 발이 아파 못 신게 되어 신발장 안에 모셔만 두는 것들이 꽤 된다. 차마 버리지 못하고 수년째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아깝고 아쉽지만 헤어져야 할 때다. 헤어져야 할 때를 놓치면 짐이 된다. 사람처럼.

건물 색감이 중동지역 같다 (18:5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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