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지리

2025. 6.20

by 지홀

서울에는 4개의 큰 성문과 4개의 작은 성문이 있다. 한양도성을 따라 동서남북에 만들어진 출입문이다. 사대문(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문이다. 동쪽의 흥인지문, 서쪽의 돈의문, 남쪽의 숭례문, 북쪽의 숙정문이다.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의 뜻을 담아 만든 이름이라고 하는데,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워야 한다는 의미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덕목이라는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많이 사라진 덕목처럼 느껴진다. 특히 불의를 보면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껴야 하는데 위정자들은 불의를 앞장서서 행하는 데다 부끄러움을 느끼지조차 않는다.


인(仁) : 어질고 인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공감하며 도덕적인 행위를 하는 것.
의(義) : 정의롭고 올바른 행동을 상징하며, 불의를 보면 부끄러움과 분노를 느끼는 마음.
예(禮) : 사회 질서 유지를 위한 규범과 예절을 지키는 미덕,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양보할 줄 아는 마음.
지(智) :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지혜로, 학문을 연구하고 옳고 그름을 가리는 행위.


4대 성문 이름에서 이미 '인의예'는 잘 나타나 있지만 숙정문이 왜 '지'를 나타내는가 의아하다. 찾아보니 북쪽 문은 산속에 위치하여 사람들의 왕래가 많지 않았고 늘 문이 잠겨있었다고 한다. 문을 걸어 잠근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풍수지리학상 숙정문과 창의문이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이 문을 드나들면 지맥이 끊긴다는 설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남쪽은 양기, 북쪽은 음기가 서린 곳으로 문을 열어두면 도성 안의 부녀자들이 풍기가 어지러워져 문을 닫았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가뭄이나 장마가 들면 북쪽문을 열어 기우제나 기청제를 지냈다고 한다. 본래 이름은 숙청문이었는데 '인의예지'를 따르지 않고 지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백성이 지혜로워지면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어려워진다고 여겨 '지'대신 '청'을 넣었다고 한다. (세상에, 조선시대에도 백성이 너무 똑똑하면 위정자가 골치 아프다고 생각했다니. 국민은 전부 개, 돼지라고 했던 사람의 머릿속은 조상으로부터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 틀림없는 것 같다. 계엄선포한 대통령을 탄핵 반대한다며 외친 한 국회의원이 시간이 지나면 국민들은 다 잊어버리고 자신을 다시 또 찍을 것이라고 했다는데, 그의 의식도 국민을 개, 돼지 이상 본 것 같지 않다) '숙청(肅淸)'은 북방의 경계를 엄하게 하여 도성 안의 사람들을 깨끗하고 맑은 세상에서 살게 한다는 의미를 담았는데, 중종 이후는 숙정문(肅靖門)으로 바뀌었다. 개칭 이유는 명확하지 않으나 '북방의 경계를 엄하게 하여 도성 안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로 청렴한 삶보다 편안한 삶을 추구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북쪽이 '지'를 상징한다는 흔적은 '홍지문'으로 나타냈다고 한다. 한양도성과 북한산성을 잇는 문으로 숙종 때 세운 문이라고 한다. (교통방송에서 흔하게 듣던 홍지문 터널의 홍지문이 이것이군!)


서울의 사소문(四小門)은 동북의 홍화문(혜화문), 남서의 소덕문(서소문), 동남의 광희문, 서북의 창의문이다. 홍화문은 성종 때 창경궁이 완공되어 그 정문을 '홍화문'이라고 하여 혼동이 일어나자 중종 때 혜화문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혜화문은 북쪽으로 연결되는 문이어서 여진의 사신이 한양에 입성할 때 이용했다고 한다. 소덕문은 소의문으로 개칭되었다가 일제에 의해 철거되고 그 문이 있던 서소문이라는 지명만 남았다고 한다. 광희문은 도성 안 장례행렬이 동쪽 성 밖으로 나갈 때 통과하던 문이라 시구문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창의문은 군인들이 출입하던 문이라고 하는데 인조반정 때 창의문을 통해 들어와 광해군을 쫓아냈다고 한다. 사대문 중 돈의문은 일제강점기 때 철거되어 흔적 없이 사라졌다. 경희궁터에서 독립문 쪽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어 현재는 그 터에 돈의문박물관이 조성되어 있다.


풍수지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집을 구할 때 대문이 남향인지 동향인지 방향을 확인하고 북향으로 머리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속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다. 조상의 묏자리를 이장해서라도 관직에 오르려는 사람도 많다. 누군가는 미신이라고 치부하지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을 굳이 무시할 필요 없다는 사람도 많다. 숙정문을 닫아 두어 한양도성 안의 여자들이 모두 정숙하게 생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선시대의 유교는 여성을 옭아매는 것들이 많았으므로 숙정문이 열려있었어도 대부분 조신한 삶을 살았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 600년의 도읍지 '한양'은 풍수지리에 따라 조성된 도시이므로 그 기운이 지금도 남아있다고 믿는다. 자연재해가 다른 지역에 비해 많이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인재(人災)는 많다.

점심 먹은 후 본 하늘은 비가 개일것처럼 먹구름이 빠르게 지나갔는데, 회의하고 나오니 다시 먹구름이 왔다(13:35, 15:18,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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