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7
회사가 체육대회를 하는 날이다. 전 직원이 운동장으로 출근하는 날, 난 사무실로 출근했다. 퇴근할 때 사무실 불을 끄고 간 적은 있으나 출근하며 불을 켠 적은 없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깜깜한 사무실이 나를 반긴다. '아, 우리 회사뿐 아니라 입주사도 다 같이 갔구나'
일 때문에 회사로 오는 후배와 점심 약속이 있었기에, 저녁 도시락을 싸왔다. 퇴근 후 운동 가려고. 그런데 필라테스 강사가 감기가 좀처럼 낫지 않는다고 오늘 수업을 못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점심을 먹기로 한 직원은 타 팀에 남아있는 신입직원을 챙겨야 한다며 같이 먹자고 했다. 일면식 없는 직원과 밥 먹기가 꺼려져 거절하고, 도시락을 먹겠다고 했다. 마침 저녁 운동이 없어져 점심때 먹는 편이 나았다. 그런데, 친한 후배 동은이 갑자기 점심 먹자고 연락 왔다. 지인이 상을 당해 장례식장 가는 길에 들를 수 있다고 했다.
얼결에 점심 약속이 생겨 도시락은 저녁으로 미루었다. 며칠 전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몸과 마음이 아프다는 말을 했더니 아무래도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점심을 함께 하며 그간 내게 일어났던 여러 가지 복잡하고 힘들었던 마음과 그로 인해 몸이 아팠던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며칠 후 뉴질랜드로 휴가 갈 계획이고 은퇴 후에는 그곳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다고 했더니 "언니는 그 증상 뉴질랜드 가면 다 나을 것 같은데!"라며 웃고는 아프지 말라고 했다. 덧붙여 뉴질랜드에 아주 가는 건 싫다고 했다. 나는 비자 없이 머물 수 있는 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며 어차피 짧다고 알려줬다. 나를 신경 써주고 일부러 찾아와 밥 먹자고 해주어 고맙다. 허심탄회하게 속마음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감사하다.
며칠 전에도 친구 미현에게 잠들 때 가끔 다음날 깨어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잠 못 들 때가 있다고 했다. 언뜻 들으면 무척 어리석고 이해하기 힘든 불안일 수 있는데, 미현은 오히려 "난 깨어나고 싶지 않아"라고 해서 놀랐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더 무섭다는 말에, 나의 불안은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겉에서 보는 모습은 그래서 알 수 없다. 내 불안에 매몰되어 하소연처럼 말을 꺼냈다가 친구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당황했다.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며 "에이, 무슨 그런 말을. 그래도 사는 게 낫지"라고 농담하지 말라는 양 가볍게 대꾸했다. 미현은 자기는 진짜 의욕이 없다면서 어려서부터 그랬던 것 같다고 한다.
지난달 자율신경에 문제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의사가 처방해 준 '잠 잘 자는 법'을 미현에게 알려준 적 있다. 심호흡을 하루에 천 번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우스갯소리처럼 한 뒤에 아침 햇볕을 쬐라는 처방을 말해줬다. 호수공원을 저녁에 산책한다고 하길래, 아침 산책으로 바꿔보라고 한 거다. 미현은 그 얘기를 듣고 아침에 몇 번 산책을 했는데 신통하게도 뭔가 해볼까 하는 의욕이 좀 생기는 것 같았다고 했다. 나는 잽싸게 그 얘기를 잡아 채 말했다. "그래~ 이게 다 호르몬 때문이야. 너도 갱년기라 그래~~ " 그리고는 진지하게 물었다. "근데 아침에 햇빛 보고 나니까 정말 뭔가 좀 의욕이 생겨?"
미현은 웃으며 말했다. "응, 정말 그렇더라고. 그 의사 처방이 괜한 건 아닌 거 같아. 너도 아침에 햇볕을 쬐봐. 괜한 불안감이 사라질지 모르잖아"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끈이 필요하다. 남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것들로 힘들다며 징징대는 것처럼 보여도, 그게 당사자한테만은 심각한 일이란 걸 이해하고 같이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냥 밥 한 끼 같이 먹자는 말, 저녁 말고 아침에 햇빛을 쬐라는 말, 갱년기라 다 호르몬의 문제라는 말이 가볍게 지나가는 말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상대방을 걱정하고 위로하는 마음이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