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1
보통 항공권을 끊은 날, 비행기 좌석까지 지정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 모바일 체크인 하라는 메시지를 받고서야 좌석 지정을 했다. 너무 늦게 한 탓에 선호하는 통로 쪽 좌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남아있는 좌석은 모두 가운데 낀 좌석이다. '화장실 갈 때 엄청 불편할 텐데'하는 걱정과 양 옆에 남자라도 앉으면 더 불편할 텐데 하는 마음에 정말 어디에 앉아야 할지 망설이고 망설이다 화장실 근처 좌석으로 지정했다. 그나마 화장실이 비었는지 줄이 얼마나 서 있는지 쉽게 볼 수 있는 곳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양 옆에는 남자 두 사람이 앉았는데 의외로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통로 쪽에 앉은 젊은 친구는 화장실에 가려는 나와 창가 쪽에 앉은 승객을 위해 기꺼이 몇 번이고 일어났다 앉아 주었다. 창가 쪽에 앉은 분은 비행기에 타자마자 주무시더니 기내식도 드시지 않았다.
11시간의 밤 비행기는 역시 힘들다. 젊었을 때는 밤 비행기가 좋았지만 이제는 정말 피곤하다. 화장을 지우지 못하는 것도 (예전에는 기내 화장실에서 세수하곤 했지만, 이제는 귀찮다), 다리 펴지 못하고 자는 것도 힘들다. 게다가 이번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잤다. 선 잠이 들었다가 깼다를 반복했다. 그 시간도 서너 시간에 불과했는데 희한하게 눈은 잘 떠지지 않았다. 정신은 다 깼는데 눈꺼풀이 딱 붙어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 기내식이 나올 무렵 떠지지 않는 눈을 겨우 치켜떴다. 대한항공의 기내식이 예전만 못하다. 아침 기내식이 죽과 스크램블 에그였는데 죽은 너무 퍼져서 푸딩 같았다. 저녁 메뉴는 세 가지로 다양했는데 내게 서빙할 시간에는 이미 그중 한 메뉴는 소진되었다고 하여 할 수 없이 한식을 먹었는데 도토리묵 국물에 밥과 돼지고기 볶음이 나왔다. 비빔밥 나올 때가 참 좋았다.
조카가 웰링턴에서 유학하고 있어 오클랜드 공항에 도착 후 웰링턴으로 가는 국내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국제선 도착 후 국내선 타는 시간이 2시간 밖에 되지 않아 '연착하면 곤란한데' 하는 걱정에 도착 예정시간이 몇 시인지를 계속 확인했다. 웰링턴으로 가는 비행 편이 많지 않아 그 비행기를 타지 못하면 6시간을 기다려야 하기에 좀 빠듯한 감이 있지만 과감히 예약했는데, 잘못했나 싶었으나 내심 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만일, 놓치면 비행기표 날리고 다시 끊으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통 크게 마음먹고 나자 마음이 편안해졌고, 경험상 큰 걱정이 되지 않을 때는 일이 잘 풀린다. 역시나 비행기는 예정시간 보다 30분 일찍 도착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어 발걸음을 재촉하여 입국장에 비교적 일찍 도착했다. 한국사람은 뉴질랜드에 전자 입국할 수 있어 여권을 스캔하고 질문에 답을 하는데 순간 답을 잘못했다. 3개월 이내 방문이냐고 묻는 질문에 "아니요"라고 한 거다. "예"라고 해야 하는데. 입국 심사대로 갔더니 줄이 꽤 길다. 나를 안내한 직원은 다행히 줄 끝으로 갈 필요 없이 심사대 바로 앞에 서라고 일러줬다. 내 앞에는 일행 2명이 있었고 금방 끝나 내 차례가 되었다. 심사대 직원은 입국카드에 적힌 것을 다시 되물었다. 며칠 머무를 건지, 어디에 머무를 건지, 어디를 갈 건지 등등. 웰링턴으로 가야 하는데 국내선 비행기 놓칠까 봐 걱정이라고 은근히 서둘러 줄 것을 재촉했지만, 그녀는 걱정하지 말라며 아주 느릿느릿 질문할 거 다하고 여권과 입국카드를 또 확인하더니 웰링턴 주소를 적으라고 했다. 조카가 있는데 주소는 모른다고 했더니 조카 이름을 적으라고 하여 적었다. 그녀는 그제야 여권을 돌려주었는데, 나는 고맙다며 자리를 떴지만 조카 이름은 왜 쓰라고 했는지 의아했다. 전화번호도 주소도 이메일도 적지 않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하며.
국내선 터미널은 걸어서 10분 거리로 무료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것보다 걸어가는 것이 더 빠를 것 같았다. 부지런히 걸었다. 화장실 가고 싶은 걸 참으며. 모바일 체크인을 한 상태지만 안전하게 짐을 부치고 볼 일을 보고 싶었다. 10시 35분 비행기였는데 9시 30분쯤에 짐을 부쳤다. 딱 맞는 시간이었다. 탑승구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는데 안내방송이 나온다. 탑승구가 바뀌었다는 안내방송이다. 많은 사람이 우르르 일어나 이동했다. 저가항공이기 때문인지 기내에 7kg 이상 갖고 탈 수 없다며 모든 승객의 짐을 저울에 재도록 했다. 세상에나. 딱 봐도 7kg가 안 될 것 같은 짐은 그냥 넘어가면 될 텐데. 일일이 다 재고 확인 스티커를 주었다. 그러느라고 비행기는 10시 35분에 출발하지 못했다.
웰링턴에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조카가 마중 나오기로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 짐 찾기 전 라운지에 조카가 있었다. 보통은 짐 찾고 나가야 마중 나온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깜짝 놀랐다. 웰링턴 공항은 남달랐다. 오클랜드 공항에서는 국내선을 타야 한다는 일념에 잘 느끼지 못했던 것인지, 웰링턴에 내리자 너무 추웠다. 백팩에 넣어간 카디건을 꺼내 입었지만 너무 추워서 짐을 찾자마자 코트를 꺼내 입었다. 뉴질랜드는 지금 겨울이다. 웰링턴과 오클랜드는 눈이 내리지 않고 기온은 영하로 내려가지 않지만, 춥다. 1도에서 12도면 추우니까. 집에 가면 시간이 너무 늦을 것 같아 조카와 공항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기로 했다. 한국의 치킨은 정말 세계적인 음식이 된 것 같다. 일식 카레집인데 한국식 치킨을 팔았다.
버스 타고 시내에서 한번 갈아타야 하는데 너무 피곤하고 버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서 시내에서 집까지는 택시를 탔다. 조카가 세 들어 사는 집에 방 하나가 남아서 내가 머물기로 했다. 뉴질랜드 집이 대체로 추운데, 여기도 무지 추웠다. 얼른 침대에 깔린 전기장판을 켜고 히터를 켰다. 식재료가 마땅히 없어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집에서 걸어서 30분. 올 때는 두 손이 무거운 탓에 버스를 타고 왔는데 온 동네를 돌고 돌아오느라 걷는 시간만큼 걸린다. 시간표대로 운행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까지 20분에서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웰링턴은 도시지만 우리에겐 시골이다.
이렇게 거의 16시간이 걸려 지구 반대편에 무사히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