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링턴 씬

2025. 7. 2

by 지홀

어제저녁 일곱 시에 잠들었다가 10시에 깨서 새벽 1시까지 뒤척였다. 뉴질랜드 올 때마다 느끼지만 3시간 시차는 바이오 리듬을 거스르기 쉬운 시차다. 덕분에 아침 11시에 일어났다. 조카에게 얼마 전 배운 요리를 만들어주려고 했는데 재료를 미처 다 사지 못해 100%는 아니었지만 80%쯤 비슷하게 만들었다. 병어 대신 도미에 크림소스를 만들어 끼얹었다. 바질로 토핑 하여 모양을 갖췄는데 보기에 그럴듯했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 생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조카가 먹을만했다.

조카가 사는 동네의 하늘과 이층버스에서 찍은 하늘 (14:36, 14:36, 14:48)

겨울이라 5시 좀 넘으면 해가 진다. 점심을 먹고 나니 2시가 다 되었지만, 웰링턴 시내에 나가기로 했다. 뉴질랜드의 웬만한 도시는 다 가봤지만, 웰링턴은 처음이라 둘러보고 싶었다. 웰링턴 버스는 대부분 이층 버스다. 우리나라처럼 교통카드를 찍고 타고 내리며 정류장에 내리기 전에 벨을 누르면 된다. 노선별 버스가 언제 도착하는지 전광판으로 보여주는데 이 시스템은 우리나라가 수출한 제도다. 우리는 마치 시티투어 버스를 탄 양, 2층 맨 앞자리에 앉아봤다. 조카는 한 번도 2층에 올라온 적이 없다며 신기해했다. 한 번도 올라온 적이 없다니! 모험심이 많은 녀석은 아님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웰링턴은 낮은 산, 언덕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구릉지대가 많았다. 버스가 언덕 꼭대기 동네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데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이었다. 대체로 경사가 심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구간은 아찔했다. 1층에서라면 전혀 못 느꼈을 기분이다.

하늘과 구름이 정말 낮다. 구름이 참 예쁘다. (15:03, 15:24, 15:24)

웰링턴 기차역에 내렸다. 오클랜드까지 기차로 갈 계획이어서 미리 어디서 타는지, 티켓을 어디서 사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전철역으로도 이용되는 웰링턴 역에는 전철 플랫폼만 안내되어 있고 기차 플랫폼이나 티켓 판매소가 잘 보이지 않아 안내센터에 문의했는데 티켓은 온라인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안내센터 직원은 굉장히 빠르게 인도억양이 섞인 영어로 설명하는데 뭐라고 자세히 묻기도 전에 자동으로 주욱 읊는다. Northern explorer라는 말만 꺼냈을 뿐인데. 문의하는 사람이 많으니 궁금해할 만한 것을 알려주겠지만, 내 얘기를 끝까지 듣지 않고 자기 할 만만 하며, 설명하는 내용에 내가 알고 싶은 건 없어서 다시 묻자 짜증 섞인 표정을 지으며 알려주는 모양이 전혀 친절하지 않았다. 기차를 어느 플랫폼에서 타는지 알고 싶었는데 티켓을 먼저 사라고 가르치듯 말하더니 기차 운행하는 날 저기 6번 창구에 가면 알려줄 거라고 한다. 그다지 고마운 마음이 들지 않았지만, 영어를 쓸 때는 뒤에 '땡큐'가 습관적으로 붙으므로 '고맙다'라고 말했다.


기차역에서 부둣가를 잠깐 거닐다가 케이블카를 타러 갔다. 트램처럼 생겼는데 '케이블 카'라고 불렀다. 관광객만 이용하는 줄 알았는데 거주민들의 교통수단으로도 쓰이고 있는 모양이다. 산 꼭대기에 집들이 많은데 차가 없는 경우 이 케이블카를 타고 출, 퇴근하는 것 같다. 편도로 끊고 중간 정류장에 내리는 사람이 있는데 아무리 봐도 여기 사는 사람 같다. 요금표에도 여러 탈 수 있는 요금, 3개월 무제한 탑승권이 있다.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인 켈번힐에 내리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여기서 보타닉가든으로 이어져 산책하기에 좋은 곳인데,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거의 5시가 다 되어 어둑해지고 있었다. 보타닉가든에 잔디가 펼쳐진 탁트인 곳도 있지만 나무가 울창한 숲 속이 있어 들어가면 캄캄했다. 해지고 나면 가로등도 없이 정말 깜깜해질까 봐 10분 정도만 걷고 다시 케이블카 타는 곳으로 왔는데, 좀 서운했다. 좀 더 걸어보자고 걷다가 결국 반 바퀴를 걸었는데 숲 속에 들어서면 조카와 둘밖에 없는 데다 너무 캄캄해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좀 무서웠다. 도시녀로 산 인생이란 이렇게 자연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빛없는 곳을 무서워한다.


조카와 머물고 있는 집에 암막커튼이 있다. 방 불을 끄면 정말 깜깜해서 휴대폰 손전등을 켜야 침대를 찾아갈 수 있다. 어제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을 때는 조카가 불을 꺼주고 나간 모양인데, 10시쯤 눈을 떴을 때 완전한 어둠에 놀라고 무서웠다. 휴대폰 불빛으로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켠 다음에는 다시 끄기가 곤란했다. 서울은 불을 꺼도 가로등 불빛이 들어와 가끔 암막커튼을 하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막상 겪어보니 어둠이 익숙해지지 않는다. 1시까지 뒤척인 이유다. 대신, 수면에는 너무 좋을 것 같다. 아침 11시에 눈을 떴을 때 푹 자고 난 느낌이었다.

부두에서 본 하늘, 켈번 힐에서 본 케이블 카, (15:49, 16:30, 16:36)

보타닉 가든을 빠져나오자 해가 기울어 어두워졌고 케이블카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마침 케이블카가 들어와 바로 타고 내려왔다. 자취생활하는 조카의 엉성한 살림살이를 보다가 전기 주전자, 물병은 필수템으로 보여 사러 갔다. 가게들이 7시, 8시까지 문을 열어 아주 낯설었다. 2년 전에도 느낀 거지만, 이곳도 야간 영업을 하는 곳이 많아졌다. 인구 증가 때문인지, 이민 온 사람들이 많아져 문화가 달라져서인지 잘 모르겠다. '다이소, 재팬'에 들렀는데 원하는 물건이 없다. 이곳저곳 몇 군데를 돌다가 겨우 전기주전자 하나를 사고 저녁 먹고 집에 오니 9시가 넘었다. 버스가 제법 늦게까지 운행해서 그것도 놀라운 점이다.


그나저나 버스에서 다음 정류장을 안내하는 방송이 나오는데 next stop 다음에 뭐라 뭐라 영어인 것 같은데 못 알아듣겠는 말을 한다. 정류장에 서기 전 반복해서 나오는 말을 계속 들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어 답답했다. 이렇게 영어가 안 들려서야 원. "다음 정류장은 ○○○입니다"라고 하면 되지 도대체 next stop 다음에 할 말이 무엇인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는다. 조카에게 물었는데 조카는 챗지피티에게 물었다. 그러나 챗지피티가 알려 준 답은 아닌 것 같다. 다음번에 더 들어보고 그래도 안 들리면 현지인에게 물어봐야겠다.


오늘 얼결에 만 보 넘게 걸었다.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걸어도 걸음 수에 따라 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니 이것도 놀랍고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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