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막커튼

2025. 7. 3

by 지홀

어제 새벽 1시쯤 불을 끄고 누웠으나 바로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몇 시쯤 잠들었는지 알 수 없다. 꿈에서 울다가 또 다른 꿈을 꾸며 몽롱하게 의식이 깨었다가 잠들다를 반복한 것 같다. 위층 주인집 사람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 아침인가 싶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에는 완전히 잠든 것 같다.


서서히 정신이 들며 눈을 떴다. 캄캄한 방. 칠흑 같은 어두움. 몇 시쯤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들어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다. 일기예보에 많은 비가 내린다고 하여 밖에 나갈 생각을 아예 하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으려고 했지만 이렇게까지 잘 생각은 없었는데 정말 오래 잤다. 기분이 좋았다. 그래봤자 수면시간은 10시간 남짓이 었겠지만, 기운을 회복한 느낌이다. 암막커튼 덕에 완전한 어둠에 갇혀 잘 잔 것 같다. 커튼을 걷고 블라인드를 들춰봤더니 밖이 어둡다. 비가 거세게 내린다. 날씨마저 잠자기 좋은 날씨다.


일어나기 싫었지만, 조카가 일어났는지 밥은 먹었는지 궁금해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왔다. 조카 방을 열어보니 잔다. 조심히 문을 닫았다. 대충 씻고 점심 준비를 했다. 된장국을 끓이기로 했으므로 밥을 안치고 국을 끓이는 사이 조카가 일어났다. 냄비가 없어 프라이팬에 국을 끓이려니 모양이 이상하지만, 마늘 넣고 버섯, 감자, 두부, 당근을 넣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었다. 양이 넘칠 것 같아 건더기가 될 재료를 많이 넣지 못했다. 조카는 맛있다며 잘 먹었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조카는 대학에 가려고 준비 중이다. 살림에 필요한 도구는 사서 쓰라고 했더니, 짐이 많아지는 게 싫다고 그냥 불편하게 살겠다고 한다. 음식 하나 해 먹으려도 도마, 감자껍질 까는 칼, 용도에 맞는 그릇 등이 필요한데 아무것도 없다. 전기포트와 물병이 없어 매번 프라이팬에 끓여 텀블러에 담는 걸 보고 한숨이 나왔다. 나는 더구나 물을 많이 마시고 아침마다 따듯한 물을 마셔야 하는데, 프라이팬에 한번 마실 양의 물을 매번 끓이다니. 그나마 전기주전자는 어제 구입했지만 물병이 시급했다. 조카는 이모 찬스로 사준다고 해도 극구 필요없다고 한다. 겨우 전기포트를 아주 저렴한 것으로 샀다. 쓸때까지 쓰고, 이삿짐에 들어가지 않으면 주인집에 놓으라고 일렀다. 어차피 그 집은 다른 사람에게 계속 세를 줄 것이므로.


점심 먹고 정리하고 내 방에서 얘기를 나누다가 몇 시에 저녁을 먹을지 논의했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 않는데 무엇을 먹을지 얘기하는 일이 좀 우스웠지만, 우리 삶에서 먹는 일이 얼마나 즐겁고 중요한 일인지를 새삼 느낀다.


한국에서는 아보카도가 비싸 잘 먹지 못하는데 여기는 싸다. 어제 마트에 갔을 때 아보카도를 보고 덥석 몇 개를 샀다. 어떻게 먹을지는 고민하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 메뉴로 연어아보카도 덮밥을 정했다. 밥은 이미 있고 아보카도는 깎기만 하면 되고 연어는 이미 훈제된 것을 샀으므로 아주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저녁메뉴다. 밥에 참기름, 후추를 좀 넣었더니 맛이 더 좋다.


하루 종일 잠옷 입고 지냈다. 집이 추워 히터와 전기장판을 켰더니 제법 훈훈하다. 밖에는 비가 엄청 오는데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어둡기만 할 뿐. TV 프로그램 '삼시 세 끼'처럼 자고 먹고 얘기하고 그렇게 보낸 하루가 왜 그런지 내 마음을 평화롭게 한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 탓에 먹구름과 안개로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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