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8
"와~ 이모, 저거 보세요!"
조카가 집을 나서자마자 외친다.
"꼭 만년설 같아요!"
조카가 가리킨 곳을 보자 길고 흰 구름이 산 정상에 절묘하게 내려앉았다.
"진짜네! 누가 구름을 들어서 산 위에 올려놓은 것 같아"
뉴질랜드는 마오리어로 "아오테아로아"라고 부른다. '길고 흰 구름의 나라'라는 뜻이다. 그 말처럼 정말 길고 흰 구름이 산 위에 걸쳐 있다. 그 위로 기다랗고 얇은 구름이 장막을 씌우듯 아주 길게 늘어섰다. 사진으로는 그 멋진 모습을 다 담을 수 없는 게 아쉽다.
웰링턴은 산으로 둘러싸인 도시다. 꼭 서울 같다. 다만 이곳의 산은 '산'이라고 부르기엔 낮고 언덕이라고 부르기엔 높아 보인다. 지명에 마운틴도 있고 힐(hill)도 있다. 그 꼭대기까지 집들이 빼곡히 들어섰다. 조카가 사는 집도 제법 높은 언덕 위에 있어 아랫동네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맑고 청명한 하늘과 풀 내음 나는 공기가 폐부 깊숙이 들어와 몸을 정화시키는 것 같다.
프라이팬을 사기 위해 주방용품을 비롯한 가정용품을 파는 곳에 갔다. 인덕션용으로 깊이가 좀 있어서 라면을 끓여 먹을 정도 되는, 뚜껑 있는 걸 사고 싶었다.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한참을 돌다가 드디어 맞는 것을 찾았다. 평소 가격은 100불이 넘는데 할인해서 30불짜리로, 1인용으로 안성맞춤인 크기의 프라이팬이다. 깊이도 적당해서 찌개를 끓여 먹기에 좋고 안에는 코팅이 되어 눌어붙지 않을 것 같았다. 다만 뚜껑이 없어 아쉬웠지만, 조카가 집주인 할머니에게 빌려달라고 요청하겠단다.
조카와 오클랜드에 가기로 했다. 오늘이 웰링턴에서의 마지막 날. 냉장고에 식재료를 남기지 않고 가려고 남아있던 적양파, 버섯, 청경채를 볶아 그 위에 3분 카레를 얹어 점심을 먹었다. 밥이 남았다.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아보카도 덮밥을 먹기로 했다. 조카는 오랜만에 라면이 먹고 싶다고 하여 내가 먹을 양만 샀다. 더불어 사과 한 개, 키위 한 개, 바나나 세 개, 단백질 요거트 1개를 후식과 내일 아침용으로 샀다. 여기는 하나씩, 소량으로 살 수 있어 좋다. 알뜰한 소비를 하는 느낌이다.
웰링턴의 마지막 날이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진다. 보름달이 뜬 하늘이 서울에서 보던 달과 다르게 보인다. 더 환하고 크게 보인다. 집으로 들어가기 전 야경 사진을 하나 찍었다. 달 주변의 구름 모양이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신비하게 느껴진다. 아직도 산 위에 길고 하얗게 늘어진 구름 저 너머 빗자루를 탄 마술 요정이 나타날 것 같은 광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