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9
웰링턴에서 오클랜드까지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다. 20대 시절 오클랜드에 살 때부터 웰링턴까지 기차 여행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일 때문에 뉴질랜드의 주요 도시는 거의 다 가봤지만, 웰링턴은 갈 일이 없었다. 여행으로 가도 되는데 이상하게 발길이 가지 않던 곳이다. 십 수년이 지나 조카가 웰링턴에서 유학을 하게 되어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여겼다. 비행기로 한 시간이면 되는 거리지만, 기차는 11시간이 걸린다. 중간 기착지에 내려 주변을 돌아보고 다시 기차를 타는 여행은 시간이 많으면 많은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조정해서 할 수 있다. 그렇게 2박 3일 혹은 3박 4일 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뚜벅이 여행자의 난관은 기차역에서 해당 여행지로 이동하는 문제가 여의치 않다는 거다. 렌터카를 하면 되는데 운전하지 않은 지 십 년 째인데다 운전을 하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귀찮은 마음이 더 커서 그냥 논스톱으로 기차만 타려고 했다. 그래서 웰링턴에 온 첫날, 기차역에 가서 묻기까지 했다. 온라인으로만 티켓을 구입할 수 있다고 하여, 사이트에 들어갔다. 북섬을 종단하는 기차는 "노던 익스플로러(Northern Explorer)"로 주 3회 운행한다. 휴가 기간 반은 웰링턴에서 반은 오클랜드에서 보내기로 했기에 수요일에 기차를 이용할 계획만 세우고 표는 끊지 않고 왔다.
그런데, 온라인 사이트에 들어가니 해밀턴에서 오클랜드는 버스로 대체된다는 안내문구가 뜬다. 정기적인 선로 점검이라고 한다. 11시간이면 서울에서 오클랜드까지 비행하는 거리다. 그 긴 시간을 감수하려던 이유는 낭만 넘치는 기차여행을 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는데, 중간에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니 목적을 이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과감히 기차 타는 것을 포기했다. 저가 항공사 운항 일정을 보고 표를 끊었다. 사실 비용도 기차값이 더 비싸다. 피곤할 뻔했는데 잘됐다 싶다.
그렇게 아침에 웰링턴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클랜드에 도착했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웰링턴과는 다르게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보통은 공항에서 항상 택시로 움직였는데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고 싶었다. 공항 밖에서 버스로 가는 방법을 보니 갈아타야 한다. 우버택시를 부르려고 했더니 60불이 넘는다. 길 건너를 보니 Door to Door 셔틀버스가 1인당 20불이라고 쓰여있길래 그리로 갔다. 둘이면 40불이면 갈 수 있으니 저렴하다. 밴에 남아있는 좌석이 딱 두 자리. 조카는 맨 뒷자리에 타고 나는 운전석 옆에 탔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는 길에 가장 가까운 숙소부터 차례대로 내려준다. 중간에 셔틀버스가 오클랜드 병원으로 들어갔는데, 어린 남자아이와 엄마가 내렸다. 아마도 입원을 하려는 것 같았다. 차에 탔을 때는 몰랐는데 내린 모습을 보니 아이 머리카락이 많이 없다. 엄마가 얼마나 걱정이 많을지 안타까웠다.
호텔 앞에 내렸다. 보코 호텔(Voco city centre)은 홀리데이 인 익스프레스(Holiday Inn Express)와 같은 건물이었다. 출입구는 다르다. 홀리데이인은 낮은 층을, 보코 호텔은 높은 층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체크인 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는데 객실이 준비되어 체크인 가능하다고 열쇠를 준다. 27층. 세상에. 높은 층이다. 속으로 좀 겁이 났지만 조카 앞에서 티를 내고 싶지 않았다. 직원은 최고층인 38층에 바(bar)가 있고 4시에 문을 연다고 알려주면서 경치가 너무 좋다고 꼭 이용해 보라고 한다. '와, 오클랜드에 이렇게 높은 건물이 들어서다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감탄 반, 우려 반 섞인 마음이다. 객실에 들어서자 항구가 보이는 뷰가 정말 멋지다. 그러나 창가에 가까이 가자 아찔하다. 고소공포증이 좀 있는 나는 얼른 뒤로 물러났다.
"창가 쪽에서는 네가 자. 이모는 안쪽에서 잘게"라며 양보하는 척 말했다. 40대까지도 호텔의 높은 층에서 자면 좋아했지만, 나이 들어 변한 것 중 하나가 높은 곳을 싫어하게 된 거다. 괜히 마음이 불안해진다. 엘리베이터는 덜컹 거리는 것 같고 1층으로 내려가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3박을 어떻게 하나 싶다.
배가 너무 고파 간단하게 요기하고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조카가 작년에 오클랜드에서 영어 연수를 했기에 마침 아주 맛있는 빵집을 안다고 하여 그리 갔다. 메인 거리인 퀸스트리트(Queen St.) 뒤 블록에 있는 하이 스트리트(High St.)의 중국식 빵집이었다. 그 집 바로 앞에는 우리나라 '네네 치킨'집이 있다. '치맥'이 전 세계적 열풍을 불러일으켰다더니 국내 치킨 체인을 두 곳이나 봤다. bbq치킨과 네네 치킨. 놀랍다. 중국식 빵집에서 크로와상과 말차 맛 크림빵을 먹었는데 아이러니하게 크로와상이 맛있다. 저녁으로는 조카가 맛을 인정한 한식당 '반상(Bansang)'에 갔다. 다른 집보다 맛있고 가격도 비교적 괜찮다고 했다. 말 그대로 순두부찌개와 오징어볶음을 먹었는데 맛있다. 홀에는 외국인도 제법 많았다.
저녁 먹기 전에 조카 신발을 사러 다녔다. 웰링턴에 갈 때 짐을 줄이겠다고 신발 하나만 달랑 신고 갔다. 몇 개월을 주야장천 그 신발만 신어서 밑창이 다 뜯기고 신발 안쪽 뒤꿈치 자리의 천이 해졌다. 게다가 그 신발은 고3 때부터 신던 신발이라는데, 이제 그 신발과의 인연은 다했다고 봐야 했다. 뒤꿈치가 까여 밴드를 붙여야 할 정도인 걸 보고 새 신발을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이번에 집에서 신던 신발 두 개를 더 가져다 줬지만, 그 신발들도 신던 것들이라 좀 낡았다. 머리도 너무 길어 산발인 상태라 한국인이 하는 미용실에 예약했다.
웰링턴에서 오클랜드까지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라 1시 좀 넘어 도착했다. 오클랜드에 도착해서 한 일이라고는 셔틀버스 타고 와서 체크인하고 시내에서 빵 먹고 조카 신발 사고 미용실 예약하고 저녁 먹은 게 전부다. 그런데 왜 피곤한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