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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홀 Dec 02. 2015

절약정신

가능하면 보일러를 틀지 않고 겨울을 지내보기로 했다. 추위를 많이 타기에 '돈 벌어서 뭐하랴'란 심정으로, 보일러를 맘껏 틀으면 얼마나 나오는지 보자하며 아끼지 않고 지내봤더니 가스비만 한달에 25만원이 나왔다.

놀래서 좀 아끼는 방법을 알아보다 침대시트를 극세사 패드로 바꾸고  hot water bottle를 주문했다. 호주 어학연수 시절에 주인 아줌마가 겨울에 요긴하다며 빌려 주었던, 처음 접해본 신 문물.  지금은 우리나라에서도 흔하게 살 수 있지만 그때는 그런 물건이 없었다. 겨울이어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는 퍼스의 날씨였지만  으스스하게  추웠는데, 난방 안되는 집에서 그 보온 물주머니는 참 고마운 존재였다.


올 초부터 극세사 패드와 보온 물주머니를 장만하고 수면양말을 신으며 보일러 온도를 낮추어 안방만 틀고 살았더니 가스비가 반값으로 줄었다. 올 겨울 목표는 10만원 이하로 낮춰보는 것. 아직까지 보일러를 틀지않고 지내고 있는데 그다지 춥지 않다. 아직 영하로 떨어지는 날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집에 있을때는 머무는 곳에만 불을 켜고, TV를 볼때는 아예 불을 다 끄고 본다. 모든 전기 제품의 코드는 늘 사용 후 뽑는다.  티슈는 가끔 두겹을 한겹으로 나누어 쓰기도 하고, 핸드크림 같이 튜브용기로 된 화장품은 가위로 잘라 내용물을 떠서 다 쓴다.  그래서 펌프로 된 화장품은 잘 사지 않는다.  내용물은 제법 있는데 펌프질이 안되고 뚜껑도 열리지 않아 아까운 마음을 금하지 못하고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샴푸는 뚜껑이 열리는 건 물을 부어 거품이 좀 더 잘 나도록 만들어 끝까지 쓴다.  비누는 조각이 나고 얇은 상태가 되면 손 빨래할때 쓴다. 거품이 되어 없어질 때 까지 쓴다. 프린트한 종이는 그 이용가치가 떨어진 후 버리기 아까워, 이면지 활용하려고 모아두고 있지만 몇장 못쓰기에 곧 버려야함을 알면서도 선뜻 못 버리고 있다.

내 절약 정신의 최악은 음식을 남기지 못하는 거다.

내게 할당된 음식은 물론 다 먹어야 하고 상 위에 차려진 음식은 웬만하면, 그릇을 비우려고 한다.  남기면 죄를 짓는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 않아 꾸역꾸역, 미련맞게 먹는다.  특히 밥은 잘 남기지 못하는데, 그건 어렸을 때부터 들은 엄마의 잔소리 덕분이다. 밥그릇에 밥풀이 묻지 않게 깨끗이, 밥 한톨 남기지 말고 먹어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농사 지은 사람들 생각해서 다 먹으라고 하셨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형편이 어려웠던 우리집에서 엄마는 밥 남기는 걸 제일 아까와하셨던 게 아닐까 싶다. 아무튼 그 잔소리가 아직도 마음에 남아 밥을 잘 남기지 못하고 자주 과식을 한다.  그러다 위염이 생기고... 어느 정도 배가 차면 음식을 남기려고 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 말은 "그거 남겨봤자 10원도 안해" 라는 말이다. 옛 남친이 말했던.  습관이 하루아침에 고쳐지지 않아 계속 먹지만, 그 10원도 안된다는 말을 가끔 떠올리며 죄 짓는 듯한 마음을 달랜다.


초등학교때 몽땅 연필을 쓴 기억, 세수한 물로 발 닦고 버리지 말라던 엄마의 말씀. 엄마는 그 물에 걸레를 빨고 변기에 버리셨다. 전깃불 아끼라던 아빠의 말씀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세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던가! 예전보다 잘 살고 물질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부모님은 여전히 구두쇠 같은 절약정신을 잃지 않으셨고, 나도 부모님의 그 잔소리와 행동으로 보여주신 절약정신 덕택으로, 물건 아까운 줄 알고 산다.

부모님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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