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또 기회가 온다.
다가올 면접을 위한 여러 가지 연습을 하면서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은지
그리고 이 일의 비전과 의미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나는 이 일에 진심으로 도전해 보고 싶어졌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더 잘 알게 되었지만
이상하리만큼 지금껏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은 대부분 어려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내 인생에 쉬운 일은 애초에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러나저러나 쉽지 않을 테니 상관없다는 마음도 들었다.
첫 번째 면접 Schwerin
여기는 병원 사설 아카데미는 아니고 사설 교육기관이어서
(사설이어도 국가자격증을 위한 직업교육이라
교육비는 내지 않지만 월급을 지불하지 않는다.)
합격가능성이 제일 높다고 생각했다.
면접시스템이 나름 체계적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씩 이곳의 지원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실제 지원자들을 공개 초대하고
뒤이어 진로상담과 면접을 논스톱으로 진행하는 듯했다.
이 날 여기서 Ausbildung을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학생들도 참여해서 도와주는데
현장에서 만나 특별히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스케줄이 짜여서 있어서
학생끼리의 입장에서의 질문을 직접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무엇보다도 면접관이었던 학장이 엄청 친절하고 사려 깊었는데 보통 외국인 학생들이 초반에 많이 힘들어하지만 자기 학교만의 노하우가 있다며 자신 있어하셨다.
특히 Ausbildung기간 안에 여러 분야에서 실습을 해야 하는데 함부르크 근처의 아는 협력기관들이 몇몇 있다며 원한다면 그쪽으로 연결해주시고 싶다고 말해주시는 등 여러 방향으로 배려해 주시는 걸 느꼈다.
긍정적인 기분의 면접이 끝나고 일주일 뒤
두꺼운 서류봉투 하나를 받았고 받는 순간 합격이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무엇 보다 이 직업을 배울 수 있는 마지노선이 확보되어서 기뻤다.
다른 면접들이 잡혀있었기에 좀 더 기다렸다가 계약할 수 있다면 더 좋았겠지만
2주일 안에 결정을 해야 한다기에 서둘러 계약서에 사인을 해서 보냈다.
두 번째 면접 Kiel
대학과 연계된 Ausbildung이었고 이곳은 면접관 두 분과 Zoom을 통해 비대면 면접을 봤다.
첫 번째 면접이 워낙에나 분위기 좋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압박면접을 예상하지 못했고 준비가 미흡했던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면접을 진행하는 동안 두 면접관의 얼굴은 계속 차가웠고
내가 하는 대답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합격하면 어떻게 출퇴근할 거며
실습하는 곳이 2-3주마다 바뀔 예정이며
어떤 곳은 너무 외진 곳이어서 그곳에서 상주해야 할 때도 있다며
쉽지 않을 것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특히 이곳의 커리큘럼을 어떤 식으로 알고 있냐 자세히 묻기도 하고
전에 어디에선가 홈페이지에서 읽은 것 같은 내용을 물으시길래
대답했더니 그건 함부르크에 있는 아카데미의 정보라고 하셔서 살짝 무안해지기도 했다.
뒤이어 각종 화학 기호들을 묻는 문제와 수학문제들을 푸는 시간이 주어졌고 생각보다 문제 풀이가 오래 걸려서 마지막 문제인 글 한 단락을 읽고 짧게 요약, 프레젠테션하는 테스트에서는 겨우 5분이 남아서 당황했다.
오 마이갓!
요즘 어린이들의 비만율에 대한 글이었는데 반도 다 못 읽고 그냥 막 대충 요약해서 설명했다.
뭐라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 너무 어이가 없기도 하고 떨어졌구나 싶어서
마지막엔 오히려 웃으며 감사하다고 말하고 비디오 통화를 끝냈다.
결국 Schwerin 확정인 거 같아서
부동산 사이트도 그쪽 동네만 뒤적거릴 정도로 이미 나에게는 아무런 희망이 없었는데
놀랍게도 1주일 후에
너는 우리는 설득시켰다, 합격을 축하한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으잉? 어느 부분에서 무엇에 설득된 거였을까?
문제들도 엉망진창으로 풀고 질소가 원소 기호로 뭔지도 까먹은 나한테 무슨 가능성을 본 거야?
기쁜 동시에 수많은 의문이 들긴 했지만 합격을 했다니 일단 감사.
월급을 받으며 일할 수 있게 되어 좋긴 하다만 한편으로 걱정이 들기도 했다.
특히 그 차가운 표정의 두 면접관들이
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이기도 해서
이 분들과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면접 후
미흡했던 부분을 특별히 보강해서
열심히 준비를 했고 그로부터 2주 후
세 번째 면접이 함부르크에서 열렸다.
이곳에서는 4시간 동안 면접을 보았는데
여러 종류의 테스트를 하는 듯했다.
스트레스받는 상황에서 반응을 어떻게 하는지,
팀워크는 잘할 수 있는지,
이 직업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셈은 잘하는지 그리고 본인이 장, 단점으로 어떻게 문제들을 해결하는지.
최대한 집중을 해서 실수를 적게 하려고 노력했고
개별면접 때는 미리 여러 번 집에서 반복 연습했던 면접 시물레이션을 떠올리며
비슷한 질문이 나오면 최대한 외운 티 내지 않고 대답하려고 노력했다.
면접관들은 다행스럽게도 다들 너무 친절했고
같이 시험본 친구들도 성격들이 무난해 보였다.
특히 필기시험 보는 도중
핸드폰 묵음설정을 까먹어서 알람이 세차게 울리는 바람에 방해됐을까 봐 너무 미안했는데
다들 그 정도로 뭘이라며 쿨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
면접을 보고 이틀 뒤, 세 번째 합격 메일을 받았다.
기대를 정말 안 했어서 처음엔 기분이 좀 얼떨떨했다.
세 번의 면접 그리고 세 번의 합격
이게 무슨 일일까?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자
이 길이 정말 내 길일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함부르크 대학병원 Ausbildung 계약서를 받고 사인을 한 후
직접 직원 사무소에 찾아가
내 기본 서류들의 공증 작업을 마친 뒤
킬과 슈베린 쪽에 감사인사를 곁들인 거절 의사를 밝혔다.
슈베린의 계약서에는 위약금에 대한 조항이 있어서 100유로를 손해 볼 수밖에 없었지만
함부르크에서 일하는 게 여러모로 이득이므로 기쁜 마음으로 송금했다.
하노버에 있는 교육 기관은 대학교와도 연계된
Duales Studium에 가까운 형태여서 매우 탐이 났지만
역시 집에서 출퇴근하며 우리 남편을 매일 볼 수 있다는 점이 더 가치 있기에
아쉽지만 면접을 보지 않겠다고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IKEA에도
다른 일을 하기로 결정해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고 메일을 써서 보냈다.
오랜 시간이 걸린 직업 탐색 과정이
이렇게 슬슬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다.
매 순간이 쉽지 않았고
조사하고 준비하는 과정 안에서도
내가 옳은 결정을 하는 건지에 대한 의심의 연속이었지만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뭘 하고 싶은지 좀 더 알게 되어
사실 필요했던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아는 지인은 남편이 돈 잘 벌어다 주는데
힘들일이 뭐가 있냐고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냐고 한다.
남편이 나의 의지처가 되어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게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우리는 가족이지만 다른 이가 도와줄 수 없는
각자의 인생의 영역 또한 있으니
앞으로도 나는 나 스스로 만족할 만한 인생을 잘 살아가고 싶다.
마흔이라는 나이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운이 없으면(!)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더 긴 시간을
살아가야 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더 나이 들어서 지금 순간을 돌이켜본다고 한다면
지금도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그리 썩 나쁜 타이밍은 아닐 것이다.
이런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참을성 있게 기다려준 나의 가족들에게 -특히 남편
새삼 고맙고 또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