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처럼 사랑하자
뜨거운 태양이 벽에 부딪혀 흘러내리고, 흘러내린 태양을 머금은 대지가 습한 숨을 뱉어낸다. 모두가 여름을 피해 숨었는지 거리에는 메마른 건물의 그림자들 사이사이 거친 실외기 소리만 들린다. 며칠 전까지 환영받던 봄바람은 어느새 낯선 이방인 신세를 면치 못하고 여름과 함께 문 밖에서 들끓고 있다.
문명이 선사한 시원함에 기대어 카페 창 바깥으로 일렁이는 여름을 구경한다. 책 한 권과 차가운 음료 한잔을 마치 여름의 노여움을 위로하는 제사 음식처럼 테이블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채 가슴을 간지럽히는 재즈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빠르게 흘러가던 시간을 붙잡고 늘어져본다.
모든 노력에 보답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구시대적 패러다임에 몸부림쳤던 젊은 날의 나를 돌아보며 결국 보답받지 못할 사랑에 취해 기쁨을 상상하는 소설 속 주인공을 안타까이 여긴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편이 훨씬 덜 복잡하다. 받는 것은 상대방이 통제하는 변수이기에 주는 사랑이 편하다. 그래서 그런지 삶이 수동적인 사람은 사랑조차 받는 것에만 초점을 둔 나머지 사랑을 복잡하게 바라보게 된다. 사랑이 복잡한 이유는 받을 것에 대한 기대가 있기 때문인 것을. 젊은 날의 나처럼, 주인공은 알지 못한다.
David Hockney <A Bigger Splash>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그의 대표작 <사랑의 기술(The Art of Loving)>에서 사랑을 단순한 감정이나 우연히 생기는 감정적 경험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의식적인 기술이자 삶의 태도로 정의한다. 즉, 사랑은 배워야 하고, 연습해야 하며, 책임 있게 실천해야 하는 능력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 '사랑하는 감정'에 빠지는 것이 아닌 사랑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감정에 빠지지 않는 사랑은 사랑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빠진다. 인류애에 가까운 플라토닉러브는 그러한 감정적 배제가 가능할지 모르지만, 남녀 간의 에로스에 있어서는 감정적 배제는 곧 권태이다. 다시 말해, 즐거움이 없다. '사랑'이라는 주제가 길가메시의 서사 때부터 넷플릭스의 서사까지 가장 중심 주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혼재되어 있는 사람의 다양한 보편적 감정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보편적 감정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호기심과 그 과정에서 오는 감정적 변화가 주는 즐거움이 중심이 된다.
여름처럼 사랑하자. 소설 속 주인공을 한낱 젊은 날의 혈기로 평가하지 말고 여름처럼 사랑하자
결과가 아플지라도 그 과정에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삶이라는 어쩌면 지리한 시간 속에서 짧게라도 즐거움이 배어들도록 그렇게 사랑하는 여름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