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했다.
익숙하지 않은 이별의 감정을 넘겨야 했다.
벚꽃이 거리에 흩뿌려지던 그날부터 장마가 시작된 오늘까지 3개월 남짓 짧은 봄연애를 했다.
시간이 짧았다고 그 감정의 깊이가 얕다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가 우리에게 특별한 기억의 도장을 찍어 주었다면 매일매일이 도장을 찍은 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은 강렬했고 추억은 달콤했다.
그렇기에 아픔도 여름날의 햇살처럼 강렬하고 뜨겁게 찾아왔다.
이별의 증상
이별을 하게 되면 신체적 통증을 동반하는 증상이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증상을 '정병(情病)'의 한 증상으로 보고, 한의학적으로 치료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한다.
이를 현대의학으로 해석한다면, 감정이 가슴을 뚫고 심장을 누르는 하나의 심장 질환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별을 하게 된 그 순간에는 코르티솔이 정점에 달하여 아픔보다는 슬픔을 뚜렷하게 느끼게 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심장 어딘가가 불규칙하게 뛰고, 숨을 깊이 들이쉬면 가슴속에 얇은 바늘이 하나씩 꽂히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후 강력하게 이별의 증상을 느끼게 되는 것은 보통 새벽이다. 문득 눈을 떴는데, 눈물이 젖어 있고, 심장이 무언가에 눌린 듯 답답하다.
마치 무언가 중요했던 장기가 빠져나간 듯한 허탈감.
만약 엑스레이로 촬영을 한다면 나의 심장은 기형적으로 커져 있고 수백 수천 개의 바늘이 꽂혀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별은 뇌를 자괴감과 우울감으로 지배한다.
이제야 아무 상관도 없는 이별의 원인을 분석하려 하고, 대체적으로 그 원인은 나의 못남에 기반한다.
그 못남을 크게 경제적, 사회적, 물리적인 부분으로 나누고 스스로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이때 뇌의 전두엽과 시상, 전대상피질이 동시에 반짝인다.
사랑이 떠난 자리에서 뇌는 혼란에 빠지고, 신체는 자꾸만 비명을 지른다. 식욕이 사라지고, 잠은 얕아진다. 평범했던 장소, 공유했던 음식점의 냄새, 길거리의 노래 한 소절에도 심장이 부정맥처럼 덜컥 덜컥 무너지고,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눈물이 흐른다.
이 증상에 특별한 약은 없다.
그저 시간이 켜켜이 쌓여 그 아픔을 덮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서서히 통증에 익숙해지도록. 다만, 아픔이 찾아오면 가슴을 문지르며 ‘괜찮아질 거야’라는 의식을 행하고 친구들을 만나 과거의 이별, 타인의 이별까지 안주삼아 씹고 뜯다 보면 조금은 통증이 덜어진다.
수박
이별은 나를 드라마틱하게 만들었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 천장을 바라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혹시라도 ‘보고 싶다’는 메시지라도 올까 핸드폰을 수시로 보면서 수시로 실망하고 있다.
들숨과 날숨의 구분 없이 한숨만이 유일한 호흡이었고,
아침인지 저녁인지 구분도 못하게 깨어있음을 증오하며 잠을 청한다. 비참하기 위해 무기력을 연기했고, 주변의 동정을 받기 위해 측은함을 연기한다.
자식의 비루한 연기를 읽었는지 태연하게 엄마가 말한다.
“아이고, 청승이다! 청승! 도대체 며칠을 그렇게 우울할 건지. 밥은 먹고 우울하든가!”
엄마는 거실에서 큰소리로 말을 했다. 분명히 내가 들을 수 있도록 하지만, 혼잣말인 것처럼. 그러면 나는 이불을 꾹 눌러쓰고, ‘세상에 내 편은 없구나’ 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스스로에게 빠져든다. 그리고는 이불속에서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향해 소리친다. 물론 내 목소리는 베개에 파묻혀 웅얼거림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하는 것이 덜 부끄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웅얼거림을 들었는지 문 너머에서 엄마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수박 썰었는데 좀 먹어! 완전 달고 맛있어.!”
……수박?
그 쌍떡잎식물 박과에 속하는 과일인지 채소인지 애매한 포지션에 위치한 식물의 이름을 듣고 갑자기 단단히 쌓아 올린 이별이란 감정의 성(城)이 살짝 흔들렸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이별로 흘린 눈물과 콧물만이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젖과 꿀이라고 생각했었다. 엄마가 차려주신 밥도 먹지 않고, 살기 위해 먹을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는 나 자신을 원망하며 햇반을 돌려 방 안에서 먹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수박이란다. 이 여름, 방문을 닫은 채 이별에 집중하고 있던 나는 거실에 설치되어 있는 캐리어님의 은혜조차 입지 못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난 그런 육체적 고통이 정신적 고통을 더욱 극대화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마도 더 이상 나에게 관심도 없는 그 사람에게 텔레파시로라도 나의 비참함을 전달하려면 육체마저 고통이 수반되어야 하니까.
그런데 수박이란다. 수박이라 함은 붉은 속살과 초록 껍질로 여름을 상징하는 문장이며 색상이다. 마치 계절의 정수를 품은 예술 작품이라고 볼 수 있지. 첫 칼질의 툭 터지는 소리는 목마른 자들이 들을 수 있는 가장 귀한 복음이고, 퍼져 나오는 싱그러운 초록빛 향기는 오아시스의 발견을 알리는 종소리와도 같다. 그 육즙은 시원하고도 진하며, 설탕보다도 순수한 달콤함을 지녔다. 그 작은 검은 씨앗마저도 하나의 생명을 품고 있는 우주와도 같으니,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으랴. 입 안에 넣는 순간, 사르르 녹아내리는 수분 가득한 단맛은 땀에 젖은 그 순간을 치유하는 마법의 묘약인 것이다.
여름의 수박은 기쁨이자, 생명이며, 치유이다.
어릴 적 사촌들과 수박씨를 뱉어서 멀리 날리던 웃음소리, 개그에 욕심 있는 친구들이 수박씨를 코 옆에 붙이고 웃음의 소재로 삼던 기억들, 친구들과 계곡에 둘러앉아 수박 한 통을 쪼개 나누어 먹던 그 순수한 시간들. 수박은 계절과 함께 오는 향기로운 기억의 파편이다.
어느새 나는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와 있었다. 테이블 위에 붉게 잘린 수박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엄마는 나를 한번 쳐다보시고는 아무 말 없이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 채 수박을 드셨다. 나 역시 조심스레 수박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 한 입, 두 입, 세 입… 게걸스럽게 수박을 탐했다. 떠난 사랑을 잊기 위해 수박의 품에 묻혔다. 수박이라면 떠난 그 사람도 용서해 줄 것이라.
입 주변은 수박물로 번들거렸고, 가슴 한쪽도 아주 조금 덜 아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