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난리는 맞아?
“야, 완전 난리야, 난리.”
SNS를 켜면, 유튜브의 썸네일에도, 친구들과의 대화 속에서도 모두가 난리다.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다. 난리.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는 ‘난리’다. 누가 무슨 옷을 입었고, 어떤 연예인이 어떤 말을 했고, 어느 식당이 문을 열자 수백 명이 줄을 섰고, 심지어 의사가 권하는 운동방법에도 ‘난리’를 붙인다. 사건의 크기나 중요성에 상관없이 ‘난리’는 이제 일상의 기본 어휘가 됐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난리’에 빠져 있는 걸까? 난리가 난다는 것은 좋은 것인가? 혹시 우리는 ‘난리 중독’ 상태에 있는 건 아닐까?
난리라는 단어는 원래 부정적인 혼란을 뜻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크게 화제가 되었다’는 뜻으로 쉽게 쓰인다. “이거 진짜 난리야”라는 말에는 놀람, 흥분, 관심이 뒤섞여 있다. 이 말은 정보를 전하는 동시에 감정을 유도한다. 그저 ‘괜찮다’고 하면 주목을 못 받지만 ‘난리’라고 하면 클릭률이 오른다. 미디어는 그걸 알고 있다. 유튜브 썸네일, 기사 제목, SNS 짧은 영상의 자막까지. 모두 ‘난리’를 부추긴다. 그러다 보니 우리도 모르게, 자극 없이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
잠시 강렬한 맛을 표현하기 위해 ‘마약’이 수식어로 붙었던 때가 있었다. 마약김밥, 마약족발, 마약국밥 등등. 사회적 자정 작용으로 마약이란 단어가 더 이상 사용되지 못하게 되었지만, 결국 가장 자극적인 어휘를 선택해야 사람들의 시선을 끌 수 있다는 감각만은 여전한 듯하다.
유튜브 시대가 되면서 긴 설명과 긴 스토리는 지루하고 트렌디하지 못하게 느껴진다. 영화나 드라마조차 짧게 요약된 축약본 영상을 선호한다. 개그프로그램에서 앞뒤 문맥 없이 웃긴 부분만 쇼츠로 만들어지고 소비된 더 새롭고 강한 자극이 없으면 주의를 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더 자극적인 언어와 상황을 찾는다. 마치 매운맛에 익숙해지면 점점 더 매운 걸 찾는 것처럼. 이쯤 되면 자극 자체가 목적이 된다. 실제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난리’였는지만 기억된다.
그런데 묻고 싶다. 그렇게 난리를 치르고 나면, 우리에게 무엇이 남는가? 거대한 이슈가 하루 만에 사라지고, 어제의 분노는 오늘의 웃음거리가 된다. 감정은 소비되고, 공감은 피곤하게 느껴지며, 어느새 ‘무덤덤한 관심’이라는 역설에 빠진다. 계속해서 난리를 좇다 보면, 정작 중요한 문제에는 무뎌질 수 있다. 소음에 익숙해지면, 진짜 위험을 감지하지 못한다.
이제는 ‘난리’보다 ‘침착’이 그립다. 침착은 밋밋함이 아니고 지루함이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이 보고, 더 천천히 생각하고, 더 성숙하게 반응하는 태도다. 큰 소리보다는 조용한 집중이, 격한 반응보다는 단단한 내면이 우리 사회에 필요한 힘은 아닐까. 모든 것이 빠르게 휘몰아치는 지금, 우리에게 진짜 난리는 '침착을 잃은 삶'일지도 모른다. 자극을 멈추고, 침착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용기. 그것이 진짜 ‘난리’를 멈추는 첫걸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