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했던 날의 이별
습도가 높다. 짜증 난다.
만약 오늘 같은 날 인어공주가 왕자를 만나러 간다면 굳이 인간의 다리가 필요 없었을 것이다.
스펀지밥조차 물이 차있는 헬멧을 쓰지 않아도 마르지 않고 그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뚱이와 함께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다.
불쾌한 찝찝함.
마치 하루 종일 어금니에 뭔가 끼어 있는 듯한데 이쑤시개로 빼려 해도 빠지지 않고, 5분 이상 어금니만 양치를 해도 빠지지 않고 끼어 있는 이물감이 불러일으키는 짜증을 높은 습도는 이빨을 건드리지도 않고도 창조해 낸다.
이렇게 짜증 나고 불쾌한 날에는 어디서 놀고 있을 운디네의 엉덩이라도 걷어차고 싶다. 여름의 더위 속에 흐르는 땀이라도 증발을 시켜야 그나마 시원한 느낌이라도 드는데 오히려 땀이 공기 중의 물방울과 손에 손을 잡고 모공과 모공사이를 헤엄치고 있다. 그러고는 티셔츠의 멱살을 잡아끌어 축축하게 피부와 밀착시킨다. 마치 오래전 첫사랑이 남기고 간 편지처럼, 짜증 나고 불쾌하다.
습한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쉬면, 그 해 여름날의 아픔이 다시 고개를 내미는 듯하다. 잊었다고 생각해도, 어느새 가슴 한켠이 꿉꿉하고, 눅눅하며, 짜증이 차오른다. 사랑이라고 말하기에도 부끄러운 짧은 시간.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채 이별을 통보받아야 했던 그 해 여름.
얼굴 위로 흐르는 땀은 눈물이 아닌 척했다. 그건 참아내지 못한 마음의 열기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었다. 그렇게 좋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슬픔이 차오르는 것은 막을 수는 없었다. 습도는 그런 것이다. 사라지지 못한 감정처럼, 그 자리에 맴돌며 나를 미련으로 들러붙게 한다.
사람들 사이를 지나며 나는 애써 괜찮은 척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다. 그저 비루한 나의 사연이 나의 얼굴에 쓰여있을까 신경 쓰였지. 짙게 깔린 구름은 사이사이 햇살을 토해냈지만, 그 속에서 나의 감정이 소멸될까 햇볕을 피해 빙 돌아서 그늘 속에서만 길을 걸었다.
서면 지하상가의 에어컨 바람은 잠깐의 위로였다. 첫사랑이 내게 남긴 짧은 미소처럼. 그리고 아직도 그 얼굴이 기억되는 것처럼 그 시원함은 아직도 기억된다. 농구를 하다가 발톱이 날라갔는데, 손톱이 있으니 괜찮다고 말해준 그 시원함.
이 여름이 끝나면, 이 끈적한 감정도 흐려질까.
아니면 그 모습 그대로 한 켠에 남아 습도가 높아지는 날이면 오래도록 나를 꿉꿉하고 짜증 나게 할까.
높은 습도로 짜증은 나지만, 사실 그 추억은 더운 여름의 짧은 시원함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