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말은 그저 껍데기다.
그럴듯한 심리학 용어들 철학자들의 언어를 빌려 말을 도구처럼 휘둘러 댈 뿐이다.
누군가가 나의 말을 현학적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학식의 두드러짐을 자랑하는 것.
나는 특별히 학식이 두드러지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그 표현에 대한 반발심이 생겼다.
하지만 결국 나는 초라한 나의 열등감 때문에 나의 내면을 과거의 뛰어난 학자들의 생각으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는 진짜 나의 말을 잊어버린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나의 말을 하는 유일한 원어민이었다.
개척자의 정신으로 나는 나의 말을 발견해 나갔다.
내가 느낀 순간, 나의 생각을 단순한 단어들로 표현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만의 언어는 조금은 거칠었어도 순수했었다고 믿는다.
그렇지만 세상은 나의 말을 쉽게 받아들여주지는 않았다.
나의 말보다는 조금 더 유명한 사람. 조금 더 공부한 사람들의 말을 사용할 때 그들은 더 잘 받아주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높이 쳐주는 환경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난 나의 말이 아니라 타인의 말을 열거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것이 조금 더 근사한 것으로 여겼다.
소쉬르는 언어가 세상을 인식하고 파악하는 열쇠이며 해답으로 여겼다. 하지만, 언어는 때로는 자유를 억압하고 상호 간의 벽을 만들며 세상의 본질을 비틀기도 한다. 사물의 실체는 다 같이 섞여있는 것인데 언어로 구별하면서 등급을 나누고 갈등을 일으킨다. 손과 팔은 하나인데 의학적으로 구별하고 서울과 경기는 이어져있지먼 편의상 구별하며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인간 본연인데 언어로 구별하여 몇 천년 간의 차별이 이어져왔다.
스스로의 언어습관을 돌이켜보고 고민을 했지만 앞으로도 나는 나의 옛 언어를 되찾지는 못할 것이다.
말을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혹은 말하는 순수함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나는 그저 인터넷에 떠도는 밈처럼 언어를 뱉어내고 있을 뿐이다.
니체, 프로이트, MBTI, 자폐스펙트럼, 구조주의 등등 개인과 사회를 해석하는 도구들을 너무나도 쉽게 사용하여 타인을 그리고 사회를 해석하려 한다.
그리고 그렇게 뱉어진 말은 어쩌면 누군가를 제단하고 할퀴는 말이 되지만 나는 그런 권위자들의 뒤로 숨는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지성인이라 자위할 뿐이다.
실존과 구조를 말하며 그러한 말을 하는 스스로를 대견해한다. 반지성주의를 이야기하면서 타인을 쉽게 단정 짓는 스스로가 반지성주의의 흐름을 편하게 생각한다.
옛 선조들은 말을 줄이라 하셨다.
가끔 언어로 차갑게 타인들을 제단 할 때 나는 그 선조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생각한다.
그럼에도 내 속에 가득한 말들을 뱉어내지 않고서는 대나무 숲에 당나귀귀를 외친 왕의 관모를 만든 모저장인처럼 속병이 걸릴 듯하다.
대화는 어렵다. 하지만, 즐겁다.
나는 대화하기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한다.
어쩌면 열등감 덩어리인 내가 그나마 나를 낫게 포장하는 방법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
오늘도 그러한 언어의 모순 속에서 담을 수도 없는 밀들을 뱉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