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소리

어린 시절 그 여름

by 우물

이 계절이 되면 주기적으로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자유로웠던 여름방학의 나날들, 에어컨은 없었지만 오래되어 털털거리는 선풍기가 돌아가는 시원한 마룻바닥에 누워만 있어도, 뜨겁게 달아오른 하루를 금세 식힐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 오후.

혹여나 여린 손가락이 들어갈까 파란색 망을 씌운 오래된 선풍기가 생각난다. 밖에서 친구들과 한바탕 뛰고 나면 집에 들어오자마자 회전하며 돌아가던 선풍기의 목을 잡고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는다. 땀이 송골송골 맺힌 살결에 차가운 바람이 닿는 것이 좋아 그렇게 한참을 버티고 있으면, 어디선가 어머니의 다정한 야단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티셔츠 속으로 집어넣었던 선풍기의 머리를 빼내고는 살짝 녹이 슬어있는 은색의 ‘1, 2, 3’ 혹은 '미풍, 약풍, 강풍' 버튼을 번갈아 누르며 선풍기 앞에서 소리를 내지른다.
“아~~~~~~~ , 와~~~~~~,어……….“
뱉어낸 소리는 선풍기 바람에 실려 떨리는 울림으로 집안 가득 흩어진다. 그러고는 선풍기바람의 강약에 따라 진동의 세기도 달라지는 것인지에 대해 친구와 논쟁한다. 바보
같지만 그것이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지금도 선풍기를 보면 가끔 영화 속 인디언 마냥 소리를 내지른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유난히도 컸다.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 소리가 시작되는 곳을 찾아간다. 밤새 열어 둔 창안으로 들어와 나뭇결무늬 방문에 붙어 힘차게 울고 있는 매미를 발견했다. 작은 곤충이 혹시 바스러질까 조심스럽게 손가락으로 몸통을 잡는다. 자신을 잡을 때까지도 태연하게 울던 녀석은 체념한 듯 우는 것을 멈추고 작은 다리만 공중에서 어기적대고 있다.

억지로 깬 아침잠에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짜증은 손가락 사이 작은 생명이 보여주는 신비로움에 사라진다. 그렇게 잡은 매미를 어머니께 보여주고 싶어 방으로 뛰어가지만 전날 피곤하셨을 어머니의 등이 너무나도 가련하게 느껴져 조심스레 다시 방을 나온다. 그러자 매미를 잡았다는 성취감보다 잡힌 매미에 대한 측은함이 커지고 창밖으로 손을 뻗어 잡은 매미를 공중에 놓아준다.

신기하게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의 장면은 여름만 되면 매미 소리와 함께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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