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마 아프 클린트 관람후기(1)
<대형 형상화 연작, 1907>
힐마 아프 클린트의 그림을 마주하며 나의 언어를 잃고 새로운 언어를 듣는다.
기존의 익숙했던 캔버스의 언어가 아닌, 낯설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이해되는 기호와 상징들을 마주한다. 원과 나선, 점과 십자가, 꽃과 백조, 그리고 물결처럼 흐르는 곡선들이 교차하며 만들어내는 그림은 단순히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우주의 비밀이 숨겨진 길을 펼치는 듯한, 영혼과 자연과 별들의 운행이 동시에 기록된 시각적 경전과도 같았다.
<인식의 나무, No.5, 1915>
클린트의 작품은 단순한 추상이 아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유럽이 경험한 격동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클린트의 그림은 태어났다.
다윈의 진화론, 원자론, 전자기학 같은 발견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제로 존재함을 시사했고, 신플라톤주의로 인한 우주에 대한 생각이 넓어지며, 니체와 프로이트 같은 철학적 사조들이 넘실거리면서 기존 종교적 신념이 무너져 내리면서 사람들은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차원을 향한 갈망을 품었다. 이 속에서 신지학, 인지학, 영매술 같은 사상들이 퍼져나갔고, 클린트는 그 흐름의 중심에 서서 그 변화들을 그녀의 독특한 시선으로 보고 있었던 듯하다.
<The Ten Largest 연작, 유년기 1>
클린트는 화가로서의 자신을 넘어서서 영적 탐구자였으며, 동시에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눈을 지녔다. 식물학과 수학에서 영감을 얻고, 영매 모임에서 전달받은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캔버스에 옮겨놓았다.
그녀가 그린 거대한 〈The Ten Largest〉연작은 인간 생애의 주기를 넘어, 영혼이 성장하는 우주적 진화의 도식이다. 그리고〈백조〉 연작은 흑과 백의 조화 속에서 대립하는 원리가 하나로 통합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가 추구한 것은 단순한 예술적 혁신이 아니라, ‘우주를 이해하는 새로운 언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백조 연작>
그러나 역설적으로, 클린트는 자신의 작품이 세상에 너무 이르다고 믿었다. 그녀는 생전에 대다수의 추상화를 공개하지 않았고, 사후 20년이 지나서야 작품을 볼 수 있도록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는 그녀가 자신의 작업을 개인적 야망이 아니라, 인류가 언젠가 이해하게 될 메시지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녀의 고독한 선택은 동시대 여성 예술가로서의 사회적 제약과도 무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술사에서 여성의 목소리는 종종 억눌렸고, 클린트 역시 그 운명을 피해 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을 가까운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시대의 변화이며, 오래전 그려졌던 그녀의 작품들이 오늘날 마침내 빛을 발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나는 그녀가 남긴 기호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해독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음에 감사한다. 과학과 예술, 영성과 철학이 다시 서로를 향해 다가서고 있는 지금, 클린트의 회화는 단순히 선구적 추상화가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사유의 장으로 다가온다.
클린트의 삶을 떠올리면, 그것은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믿고 홀로 걸어간 순례자의 길과 같다. 그녀는 붓을 통해 보이지 않는 진리를 붙잡으려 했고, 언젠가 인류가 그 언어를 읽게 되리라 믿었다. 작품 앞에 선 우리는 그녀가 본 우주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예술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주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우리는 그 안에서 어떤 존재인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회화는 그 질문을 결코 단순하게 답하지 않는다. 대신 색과 형태, 상징과 기호로 우리를 더 깊은 사유로 이끌어간다. 그녀의 삶과 작품은, 결국 우리 모두가 우주의 거대한 진화 속에서 함께 길을 찾고 있는 순례자임을 깨닫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