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존재, 남성은 현상

힐마 아프 클린트 관람후기(2)

by 우물


<The Ten Largest, 청소년기>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여성을 “타자”로, 남성을 “주체”로 규정한 사회 구조를 비판하며, 여성의 존재론적 지위를 새롭게 조명하였다. 흔히 “여자는 존재이고 남자는 현상이다”라는 표현으로 요약되는 그녀의 주장은 단순한 성별 구분을 넘어, 인류가 구축해 온 역사와 사회 속 권력관계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하지만 나는 여성의 “존재”에 매료된다.

여성은 존재 그 자체로 독립적이고 자유롭다.
여성은 남성처럼 어떠한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서 여성이 남성보다 프리랜서로서의 삶을 훨씬 더 잘 해낸다.

반대로 남성은 현상의 타자로 구조에 수동적으로 얽매여 있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계급과 지위를 인정받는 것을 중시하며 실존보다 명예를 위한 선택을 한다. 대다수의 남성은 그들이 가진 명함을 자신의 존재로 인식하고 그 명함에 적힌 직함을 위해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여성의 “존재”는 억압된 수동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본래적 주체성을 회복해야 할 잠재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남성의 “현상”은 절대적 주체의 지위를 누려왔지만 동시에 그 역사적 지위에 매여 있는 수동성을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존재로서의 주체성은 자유와 자기규정의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보부아르가 비판한 것은 여성이 남성의 시선 속에서만 정의되는 현실이었다. 여성은 아내, 어머니, 혹은 성적 대상이라는 관계적 규정을 통해 타자화되었으며, 따라서 사회적으로는 ‘단순히 존재하는 자’로 축소되었다. 그러나 철학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존재”의 상태는 오히려 새로운 주체성을 열어젖힐 수 있는 잠재적 기반이다. 여성은 자신이 단순한 타자가 아니라, 자유롭게 선택하고 역사 속에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능동적 주체임을 자각할 때, 존재는 곧 해방적 주체성으로 전화될 수 있다.

남성의 현상으로서의 수동성은 역사적 특권에 묶인 제약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주체로서 역사를 구성하고 문화를 생산하는 위치에 있었기에 ‘현상으로 드러나는 자’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러나 이 현상적 지위는 능동성의 표현이자 동시에 조직 내의 역할에 종속된 수동성이기도 하다.

남성은 자신이 주체라는 관습적 규정 속에서 안주하며, 여성과의 관계 속에서만 자기 정체성을 강화해 왔다. 따라서 보부아르의 시각에서 남성의 “현상”은 단순한 권력의 표지가 아니라, 자기 성찰을 결여한 수동적 반복의 표상으로 볼 수 있다.

보부아르의 철학적 문제 제기는 성별을 본질적으로 구분하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녀는 여성에게는 존재로서의 주체성, 남성에게는 현상으로서의 수동성을 부각시킴으로써, 양자가 모두 자기 존재 방식을 성찰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여성은 더 이상 단순히 ‘거기에 있는 자’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자신을 현시할 수 있는 주체로 나아가고 있으며, 남성은 자신이 누려온 현상적 주체 지위가 곧 수동적 굴레가 될 수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이러한 상호 성찰을 통해서만 비로소 성별 간의 진정한 해방과 대화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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