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에서

by 우물

여름이 저문다.

떠나가는 연인에게 재촉하듯

빨리 가버리라고

지긋지긋한 이 여름이 언제쯤이면 끝나나고

히스테릭하게 짜증을 냈다.

지독한 더위.

눈썹 위로 맺혀 눈으로 들어가는 굵은 땀방울의 따가움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진절머리가 나던 더위.

여름의 뒷자락에서도 그 더위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뜨거워지고 짜증이 오른다.


어린 시절 여름은 마냥 좋았는데.

에어컨도 없는 집이지만 창을 열고 시원한 나무마루에 누워있으면 그저 좋았는데.

포근한 이불 대신 어머니가 깔아주신 까슬까슬한 대나무 돗자리에 뒹굴면 그 시원한 촉감에 기분이 좋았는데.

한낮 뙤약볕에서 술래잡기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면 빨간색 대야에 받아 놓은 물로 등목을 한바탕 하고 노곤노곤한 몸으로 어머니가 썰어주신 수박을 먹으면 아무 걱정 없이 좋았는데.

나의 여름들은 그렇게 좋음으로 가득했는데, 나이가 들고나니 짜증으로 가득하다.

여름이 한창이면 캐리어님께서 받지 못한 노벨상에 문제가 있다고 비아냥대다가 여름이 저무는 지금은 캐리어 때문에 환경파괴가 일어나고 그래서 지구가 더운 거 아니냐며 비아냥댄다.

젊은 날의 여름은 마냥 좋았는데.

여름캠프에서 봤던 별이 가득했던 청도의 밤하늘 그리고 캠프파이어.

자라는 잠은 안 자고 친구들이랑 손잡고 하던 전기놀이.

죽기 살기로 했던 물풍선 던지기와 물 반 수박반 먹던 수박 먹기 게임.

무언의 007을 하던 중 누군가 뀐 방귀로 죽음의 007을 맛본 여름캠프.

그 모든 순간의 여름이 너무 좋았는데.


시간은 흘러도 기억은 그 자리이기에.

나의 여름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지금의 여름을 조롱하나 보다. 아무런 추억도 쌓지 못하는 어른이 되어버린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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