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서 멍하니 앉아서 재즈를 듣고 있으니 때 이른 크리스마스가 고프다.
콘트라베이스의 육중하게 튕기는 음과 피아노의 은은한 화음은 더운 여름임에도 겨울밤 난로 옆에 앉아 있는 듯한 아늑함을 불러온다. 아직은 무더운 열기가 창밖에 끈적하게 붙어 있지만 재즈에 취하면 가슴 한편 깊숙한 곳에서 크리스마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진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가 되면, 작은 양말을 머리맡에 놔두고 잠이 들었다.
그렇게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깨면, 소중한 선물과 함께 양말에는 ABC 초콜릿과 같은 작은 먹거리들이 가득 들어있었다.
그리고 반딱거리는 재질의 포장지로 싸여 있는 선물상자를 뜯어보면, ‘종합과자선물세트’가 들어 있었다. 그 시절 나에게 ‘종합과자선물세트’는 과자계의 뷔페와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무엇이 들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스낵, 비스킷, 초콜렛 다양한 종류의 과자와 함께 사탕 심지어 롯데껌까지 들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머리맡의 작은 양말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산타클로스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크리스마스 아침의 기분 좋은 경험은 지금도 되새기면 내 삶을 따습게 해주는 등불과도 같이 켜져 있다.
단칸방의 좁은 집에서 부모님은 그렇게 그냥 선물이 아니라 크리스마스를 선물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내게 예수님의 탄생으로서의 의미보다는, 부모님의 따스함을 되새기는 의미로서 작용하는 듯하다.
더운 여름, 에어컨 바람을 쐬며 크리스마스를 생각하는 아이러니에 헛웃음이 나온다.
재즈가 불러오는 크리스마스의 향수는 사실 음악 그 자체보다도 나의 기억에 맞닿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카페에서, 백화점에서, 혹은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들려오던 선율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기에 그런 것이겠지. 그리고 그 선율이 크리스마스의 따스한 기억과 맞물리며 재즈가 흐를 때마다 톱니바퀴처럼 크리스마스가 연상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여름저녁 흘러나오는 재즈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계절을 앞당기는 시간 여행의 열쇠가 된다. 아직 오지 않은 크리스마스를, 때 이른 그리움 속에서 미리 만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