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마 아프 클린트 관람후기(3)
힐마 아프 클린트의 회화는 이러한 보부아르의 철학적 사유를 시각적 언어로 옮겨 놓은 듯하다. <The Ten Largest> 시리즈를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마주할 때, 나는 시대의 언어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발견의 기쁨과 생명력의 폭발 앞에 서있었다. 웅장한 그림 가득 채운 나선과 꽃, 진화론의 상징들 그리고 흐르는 듯한 색채들은 그녀 내면에서 요동치던 세계를 암시했다.
그것은 보부아르가 말한 여성의 “존재”와 닮아 있다. 타자의 위치로 밀려난 여성은 사회 속에서 침묵을 강요받았지만, 그 내면에는 언제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에너지가 응축되어 있었다. 아프 클린트의 원초적 색채는 바로 그 잠재성, 언어 이전의 자유를 환기한다.
반면 <The Swan, No. 17>은 남성의 “현상”을 시각적으로 비추는 듯하다. 흑과 백의 백조가 원 안에서 마주 보며 대칭을 이루는 장면은 질서와 균형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반복과 폐쇄의 구조를 드러낸다. 보부아르가 지적한 남성의 현상성 역시 그러하다. 남성은 끊임없이 주체로 드러나지만, 그 주체성은 기존 사회의 틀 속에서만 반복된다. 그는 늘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그 안에서 자유롭게 변모하지 못하는 수동성을 드러낸다. 아프 클린트의 흑백의 백조는 이 역설을 상징적으로 그려낸다.
보부아르와 아프 클린트는 서로 다른 매체를 통해 같은 질문을 던진다. 보부아르는 철학의 언어로, 아프 클린트는 추상의 이미지로 “우리는 어떻게 타자의 자리를 넘어 주체로 나아갈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존재와 현상, 언어와 그림은 여기서 나란히 선다. 그 그림을 그렸던 여성은 단순히 존재에 머무르지 않고 자유를 향해 나아갔으며, 그 그림을 관람하는 한 남성은 현상 속에 갇힌 자기 반복을 깨뜨리며 나아가야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깨닫는다.
보부아르와 아프 클린트의 목소리는 결국 하나의 요청으로 모아진다. 새로운 주체성은 반복과 억압을 넘어, 아직 말해지지 않은 색채와 언어 속에서 태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