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

목욕탕에 대한 고찰

by 우물

피곤에 절어 늘어진 몸을 이끌고 온탕에 몸을 담근다. 벌거벗음이 허용된 유일한 장소. 타인의 벌거벗음도 나의 벌거벗음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 곳이다.

온탕의 온도는 40도. 나의 체온보다 3도가량 높은 온탕의 온도는 기분 좋은 따스함을 안겨준다. 기분 좋은 따스함. 그저 물안에 몸을 담그고 있는 행위에 불과하지만 그 이상의 편안함을 줄 수 있는 다른 수단도 찾기 어렵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저씨들이 정사각형의 각 변을 차지하고 앉아있다. 마치 더운 날 아이스크림이 녹아 흘러내릴 듯 낮은 탕벽에 기대어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표정은 베토벤의 교향곡을 오페라 하우스에서 듣기라도 하는 듯하다.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지그시 감은채 편안한 모습이다. 하지만, 어린아이들에게는 꽤나 견디기 어려운 장소인가 보다. 아이의 아빠처럼 보이는 사람이 들어오라고 아이를 설득해 보지만 아이는 찡그린 표정으로 탕 밖에서 서성인다. 그 아이에게는 지옥불과 다르지 않은가 보다. 아지라이 피어오르는 따스한 증기와 부글부글 거품이 일어나는 탕 중앙에 순환기가 제법 지옥불처럼 연출하는 듯하기도 하다.


폴 세잔, 목욕하는 사람들 연작

안마풀의 온도는 34도. 나의 체온보다 3도가량 낮은 안마풀은 차갑지는 않지만 미지근한 시원함을 가져다준다. 생각해 보면 딱히 미지근한 물도 아니다. 34도면 여름날의 더위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곳에 몸을 담그면 시원함이 느껴진다. 사람의 체온보다 낮기에. 너무 차갑지도 따스하지도 않기에 수많은 아이들이 북적거린다. 특히 주말 낮이 되면 성인으로서 들어가기에 주저될 정도로 아이들로 가득하다. 아이들은 마치 자신들의 영역인양 작은 풀 끝에서 끝으로 종횡무진하며 물장구를 치는가 하면, 마치 수련하는 소림사의 수도승처럼 각종 무술을 물속에서 뽐내기도 한다. 물의 장력에 자신의 장품을 실어 친구들에게 흘려보내는 모습을 보면, 물속에서 어린 시절 드래곤볼의 손오공을 따라 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열탕의 온도는 43도. 온탕보다 3도 정도 높다. 그 차이는 3도에 불과하지만 몸을 담그고 앉아있기에 꽤나 큰 도전을 요구한다. 처음에 다리를 담그고 점차적으로 가슴까지 담그게 되면 살짝 갑갑함이 느껴지는 온도다. 탕의 크기도 온탕의 반의반 수준. 그만큼 사람도 적다. 그 3도 차이에 사람들은 그곳에 있기를 꺼려한다. 혈압이 있는 사람들은 주의해야 할 정도의 온도. 그것이 겨우 온탕과 3도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새삼스럽다.

냉탕의 온도는 14도. 상당히 차갑다. 발끝만 살짝 담가봐도 온몸으로 거머리가 기어오르듯 서늘한 기운이 기어올라온다. 담갔던 발을 재빨리 빼내어 다시 온탕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왜 그렇게도 무모한 도전을 하냐는 듯 차가운 기운에 긴장했던 몸이 다시 늘어지며 편안함을 느낀다. 온탕에 들어가 실패한 도전의 아쉬움으로 다시 냉탕을 바라보고 있으면, 어깨 양쪽으로 초록색 날개라도 단 듯이 문신을 가득 새긴 머리 벗겨지고 배 나온 아저씨가 힘찬 기합과 함께 물을 튀기며 냉탕으로 입수한다. 아마 두터운 내장지방과 외피가 차가운 기운을 막아주리라. 바다코끼리도 그렇지 않은가. 저 아저씨도 두 발을 모으면 바다코끼리와 모습에 큰 차이가 없거늘.

폴 세잔, 목욕하는 사람들 연작

목욕탕은 재미있는 장소이다. 직장 내에서 각자의 신분이나 사회에서 각각의 지위를 모두 벗어야지 들어올 수 있다. 바깥에서 부러움은 상대가 몰고 다니는 차가 될 수도 있고, 차고 있는 시계가 될 수도 있으며, 입고 있는 옷이 될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군살 없이 탄탄한 몸이나 우람한 페니스가 최고의 부러움이 된다. 키가 작아도 조금 얼굴이 못생겨도 상관없다. 젊고 탄탄한 몸과 남다른 남성의 심벌만이 비교우위를 가지는 장소가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동물의 한 개체로서의 매력은 결국 목욕탕에 들어와서 정확히 알 수 있게 된다. 탕의 온도가 각각 다르듯 목욕탕에서 벌거벗은 몸에서 나오는 자신감의 온도 역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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