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데! “
그녀는 먹고 있던 떡볶이 접시 위에 젓가락을 내던지며 내게 물었다.
접시 위로 고여있던 떡볶이의 국물 방울이 도망치듯 흩어지며 그녀에게로 그리고 나에게로 튀었다. 점성이 있어 묵직한 방울들이 그녀의 하얀 원피스를 빨갛게 물들였고 나의 얼굴에도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작은 국물방울들이 튀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녀의 행동에 당황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묵직하게 나의 무게를 온전히 받쳐주고 있던 의자가 고통스럽다는 듯이 바닥을 긁는 소리를 내며 뒤로 밀려났다. 나는 급히 테이블 위에 비치되어 있던 티슈곽에서 티슈를 뽑았지만 티슈는 반 이상이 입구에 물려 찢어졌다. 찢어진 반쪽짜리 티슈로 얼굴의 온기를 닦아내니 마치 붉은 피가 번지듯 하얀 티슈에 빨간 떡볶이의 국물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는 티슈곽에 물려 있던 나머지 반쪽의 티슈와 또 다른 티슈 몇 장을 더 뽑아서 얼굴을 다시 한번 닦아내며 더 이상 빨간 국물이 묻어 나오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얼굴을 닦아내기를 멈추었다. 이제야 생각나는 것이지만 나는 떡볶이 국물을 닦아내려 했던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녀의 행동에 대한 나의 당혹스러움과 부끄러움을 닦아내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녀와의 아픈 추억을 닦아내려고 했던 것일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걸까? 분명 짧은 시간이었을 것이다. 옷에 묻어있는 자국들을 지우려고 다시 한번 티슈를 뽑으려는 순간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인식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입술을 너무 강하게 깨물었는지 입 주변이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티슈를 뜯어 그녀의 얼굴을 닦아줄까 했지만 그냥 내 옷에 묻어 있던 흔적들을 다시 지우기 시작했다. 그저 그 자리에서 있었던 흔적들을 지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옆자리에 올려놓았던 가방을 어깨에 둘러메고 아무 말 없이 뒤돌아서 가게문을 옆으로 밀었다.
짙은 갈색의 오래된 샷시 문이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열렸다. 그 순간까지도 그녀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대충 시멘트를 부어 만든 듯 한 돌계단을 내려가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차가운 가을 공기가 무겁게 갇혀있던 폐 속의 공기를 다시금 신선하게 해주는 듯했다. 산뜻한 공기와는 다르게 감정은 걸음이 쌓일수록 무거워졌다. 한걸음, 두 걸음. 열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어깨가 들썩였다. 흐르는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터져 나오는 것을 결국 막지 못했다. 가슴속에서부터 끄윽하는 소리가 꽉 닫고 있던 입술사이로 억지로 삐져나왔다. 끄윽 끄윽하면서 새어 나오던 울음이 결국 터지고 말았다. 화가 났던 것보다 억울했던 것이리라. 그리고 억울했던 것보다 슬펐을 것이리라. 이렇게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나의 몸은 그제야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삐그덕거리기 시작했고, 더 이상 즐겁지 않았다. 하루 한 번의 전화통화는 피로감을 더했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 하던 데이트도 일 때문에 바쁘다는 핑계로 서로 미루기 바빴다. 만남에 설렘은 없었고, 불편함만이 그 자리를 채웠다. 그렇게 이별의 내용은 충분했지만, 그저 언어로 표현되는 형식이 부족한 채로 몇 달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 난 불편한 내용을 형식으로 매듭 짓고자 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별의 내용이 아직 채워지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귀는 거 맞지?”
그녀의 손을 잡은 채 해운대 바닷가를 한참 걷다가 긴장되는 목소리로 물었던 기억이 난다.
“그걸 꼭 말로 해야 할까?”
그녀는 웃으며 답했다.
사랑의 시작은 내용만으로 충분했다. 언어의 형식은 필요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원하고 서로가 서로를 아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형식의 부재가 관계의 발목을 잡을 때가 있었다. ‘너는 나와 사귄다고 생각하는 걸까?’ 확실히 던지지 않은 언어는 그렇게 때때로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그런지 너는 내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너는 나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며 사랑으로 적혀있던 내용은 밋밋하고 색이 바랬다. 그래서 새롭게 이별이라는 내용으로 채우다가 완성되지 않았던 사랑의 형식이 그렇게 내 감정의 발목을 잡았기에 이별은 완성된 형식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