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보지 않는 시대

by 우물

땅을 바라본다.
아비는 농사를 짓던 기억들이 몸이 배어있어 땅을 본다.
자신이 서있는 곳이 논밭이 아님에도 가던 길을 멈추고 물끄러미 땅을 본다.
깔끔하게 포장된 땅 위에 무엇이 있는지 고요하게 바라보는 곳을 좇아서 나의 시선을 겹치면 아스팔트 사이로 비집고 나온 초록빛 무언가를 발견한다. 이름 모를 풀잎들이 아비에겐 모두 그 이름이 있다.

땅을 본 기억이 있다.
어린 시절 개미들이 먹을 것을 이고 지고 줄을 지어 분주히 움직이는 것을 보거나, 비 온 다음날 마른땅 위에서 죽어가던 지렁이를 땅 위에서 보았다.
해를 등지고 땅을 보드 삼아 땅따먹기를 하다가 땅에 선을 긋고 구슬치기를 하며 땅을 보았다.
동네 어르신들께 인사하며 땅을 봤고, 야자를 째고 걸려 운동장에서 선생님께 얼차려를 받으며 땅을 보았다.
프러포즈를 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미니 촛불을 하트모양으로 놓으며 땅을 보았고, 약속시간에 지각하는 그녀를 기다리며 땅을 보았다.

<장프랑수아 밀레, 만종>


나이가 들고 그처럼 땅을 본 것은 언제였을까.

휴대폰에 가려진 땅은 그저 목적지까지 걸어가는 발걸음의 길이가 되어버리고, 삶의 생산처가 아닌 수치와 측량 그리고 투기의 부산물이 되어버린 듯하다.

언제부터일까.
자신을 구부리고 땅을 보는 행위가 어색하여
뻣뻣해진 등을 구부리지도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우연한 100원의 행운을 땅에서 마주하며 느끼던 그 반가움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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